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5월 6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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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회갑을 맞았다.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서 예까지 왔는데, 예순 살이란다. 만 60년을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마치 길 위의 횡단보도 선처럼 60년이라는 선을 그어놓다니.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수수께끼 같은 그 무엇을 ‘시간’이라 여기는 것이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 그저 나서 자랐을 따름인데….
인류는 거기에 천체의 움직임, 특히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살펴서 1년 또는 하루라는 시간의 길이를 ‘달력’ 속에 넣었다. 대단한 지혜다. 오늘날의 달력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 초기에는 천체 중에서도 달의 역할이 커서 달력〔月曆〕이라고 하였을 것인데, 이는 서양의 Calendar라고 해서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의 개념을 인류가 언제부터 깨우쳤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인류의 초창기 사람들은 날이 밝으면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어두워지면 열악한 안식처에서 피곤한 육신을 쉬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힘이 다하면 몇 년을 살았는지도 모르고 삶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오늘날은 살아 온 햇수를 명확하게 알 수 있으니,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다.
그런데 일정한 길이의 시간을 둘로 구분을 할 때, 과거에는 전·후(前·後)의 표현을 많이 썼는데, 언젠가부터는 상·하(上·下)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운동경기에서는 아직도 전반전과 후반전 등의 전후를 쓰고 있으나, 예능 프로그램이나 예결산 등에서는 상반기와 하반기라고 대부분 쓰고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선조들이 책을 구분 지을 때 상하, 상중하 또는 내외, 원형이정(元亨利貞) 등으로 표현한 것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한다.
고서는 지금처럼 하드카버가 아니고 또 고본을 세워둘 만한 도구도 마땅치 않았으므로, 책을 세워서 보관하지 못하고 포개었을 것이다. 그러니 연속된 내용의 책을 둘로 나누어서 제본을 할 때는, 위와 아래 즉 상하로 표기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책을 쌓아놓듯, 또는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시간을 구분 지어 말할 때는 상하보다는 전후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기원 전, 기원 후처럼 말이다. 국어사전에는, ‘시간이나 세월이 흐르다’라고 나오므로, 흐른다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기는 구름도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지는 않지만, 역시 흐른다고 한다. 구름도 그저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것뿐인데. 우리의 정서가, 구름이 ‘지나다’라는 표현보다는 ‘흐르다’는 표현에 더 익숙해져 있는 탓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시적(詩的)으로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때에는, ‘시간을 죽이다’라는 표현도 더러 쓰고 있는데, 이는 어법에도 맞지 않으며 결코 바람직한 표현이 아니니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요즘을 일컬어 ‘백세시대’라고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백세시대는 꿈만 같은 말이다. 결단코 올 것 같지 않던 백세시대가 우리 세대의 코앞에 와 있다. 분명 축복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백세까지 산다는 것은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더구나 건강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제 막 육순을 맞았으니, 인생 마라톤의 전환점을 조금 더 지났다. 옛날 같으면 공자의 이순〔耳順;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을 터득해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이에 미치지를 못하니 헛나이만 먹은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인생 마라톤을 잘 완주하려면, 무엇보다도 건강이 관건이다. 건강하지 못한 후반부의 삶은, 물이 흐르지 못하면 정체되어 썩듯이 고난의 세월이 되기에 십상이다. 병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은 곧 물이 정체되는 현상과 다름없는 것이다. 인생의 후반부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건강을 위한 노력과 함께 삶의 목표도 뚜렷하게 정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의 경우는 거창한 목표를 정하기보다는, 공자 이순의 의미를 깨닫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은데, 그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뜬구름 잡는 격은 아닌지 모르겠다. 보고 듣는 일마다 아직도 감정이 누그러들지를 않으니 말이다. 여하튼 ‘이순’이라는 화두를 들고 뛰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 시간이야 흐르는 것이든 지나는 것이든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런데 그 이순의 경지는 어찌하여 터득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