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4월 6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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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책이나 들여다보는 아들에게 “니 전생은 좀벌레였을 끼다”고 못마땅한 속내를 자주 내비쳤다. 이 벌레는 어둡고 습기 낀 집 안을 선호하는데 특히 낡은 책들 속을 안식처로 삼았기에 감히 선비들의 전생으로 거명되곤 했다.
말로야 책과 벗하는 좋은 직업이라지만 평론가란 ‘창작을 출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석녀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 창작은 생명력이 있지만 평론은 모조품이란 점 때문에 항상 양자를 바꿔 들여야 하는 고아원장처럼 비평가는 정신적인 방탕아로 줄곧 더 예쁜 남의 아이(작품)에만 눈독을 들이곤 하기에 황량한 영혼으로 유랑하는 고독하고 끈질기게 대상을 탐색하는 어린이 유괴범 꼴이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기자 집 안 전체가 서고처럼 변모해버려 식구들은 한마디씩 책의 거추장스러움에 토를 달기 시작했고, 그게 ‘밥줄’인 나로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어전에 나섰지만 그게 먼지의 진원지이자 집 안을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원천임을 부인하기에는 궤변에 능한 나로서도 대처할 방도가 없게 되었다. 은연중 형성된 가족들 간의 묵계가 바로 우리 집엔 1만여 권 이상의 책은 용납할 수 없다는 소유 제한제였다.
한때는 5만 장서였으니 이 제한 조처에 묶여 나는 예고 없이 수시로 유태인 포로수용소의 잔혹한 게슈타포 장교처럼 책꽂이 앞을 사열하며 허약한 포로(‘양자’가 어느새 내 고독의 강제 동반자인 가련한 ‘포로’로 전락)를 골라내기에 혈안이 되곤 한다. 일단 내가 읽고 글을 썼으며 앞으로 다시 안 봐도 섭섭잖을 책이면 선뜻 뽑아 허약한 유태인을 형장으로 보내듯이 처치해 왔다.
그러나 나이가 70을 넘어서자 내 스스로 1만도 많다는 생각이 강력한 감군 정책을 전개해서 지금은 7천여인데 이내 더 강력히 처분할 것이다.
[임헌영]
경북 의성 출생. 안동사범, 중앙대 국문과, 대학원 석사 졸업. 경향신문 기자, 월간 『다리』 주간, 중앙대 출강. 1974년 유신 시기(1972∼1979)에 2차에 걸쳐 투옥, 특사로 출옥 후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도서출판 한길사 거쳐 참여사회아카데미 원장. 1998년 사면 복권, 민주화유공자로 인정(2006년).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2010년). 세계문학기행 20여 차례, 해외동포문학 연구 및 세계유명 문인과 인문학자 유적 탐방. 200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2026년부터 국립한국문학관 관장. 중요 저서 『임헌영의 유럽문학 기행』『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국현대필화사』 외 단독저서 27권, 공저 3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