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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중

소설가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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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01.창작의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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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키나와 공항은 모든 비행기가 결항되다가 점심때가 지나서야 운항을 재개했다. 결항으로 승객이 밀리는 바람에 가까스로 항공권을 구입해 탑승을 했다.
태풍의 꼬리를 물고 비행기가 운항한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신문을 폈다. 기사가 읽혀지질 않고 읽던 자리를 계속 맴돌기만 했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때였다. 기내 안에 방송이 흘러 나왔다.
“본 제트이 육공일 항공기는 삼십 도선 바다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으니 비치된 구명조끼를 착용하기기 바랍니다. 예상했던 태풍의 진로가 바뀌어 바다로 불시착할 수도 있으니 마음에 준비를 하시고, 바다에 불시착하면 생존 수영을 하고 있으면 한 시간 내로 구조선이 올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반복되는 안내 방송이 귓전에 맴돌았지만 황당한 생각만 들었다. 
“아버지, 어서 구명조끼 입으세요.”
아들녀석이 채근하며 구명조끼를 건네주었다.
“그럼 비행기가 바다에 떨어지는 거냐?”
“바다에 내려앉으면 비행기 밖으로 나가야 해요.”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러나 괜찮을 거라는 믿음을 담은 눈빛을 보내 왔다.
“이 비행길 타는 게 아닌데….”
“괜찮을 거예요. 일본 기상청 예보를 받은 건데 설마하니….” 
“야, 설마라니? 태풍 진로가 바뀌어서 그렇대잖아. 그 바뀌는 것까지 어떻게 알겠냐.”
사실 오키나와 여행길에 오른 것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아들녀석이 모처럼 휴가를 냈다면서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는 제안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쎄가 팔십을 넘기고 살아오는 동안 아들이 성인이 된 후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게망게하지 않고 선뜻 응한 것이었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내 경우는 남들과는 다른 사연이 있다.
아들녀석이 네 살 되던 해 아내와 이혼을 했으니 그 녀석은 에미의 정을 모르고 살아온 셈이다. 따라서 애정결핍증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가끔 느끼곤 했다. 이제 아들녀석도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아 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아버지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고 그리 여행을 제안한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함께했는데 이런 급박한 상황에 처하다 보니 그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어떤 기류에 휘말리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태풍 속에 말려들어 가고 있다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고 특별한 구멍수가 없어 눈을 꾹 감았다. 아들녀석이 내 손등에 손을 얹었다. 따스한 체온이 전해왔다.

 

아들녀석이 다섯 살 되던 해,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아내와 결별한 이듬해 봄이었다. 백원짜리 동전과 바꾼 새우깡을 다 먹고 고사리 같은 꼬막손으로 아쉬움에 빈 봉지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제 에미의 젖무덤을 매만지듯 순진한 눈망울을 굴리며 빈 새우깡 봉지를 매만지다 휙 던져버리는 그 모습은 내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아픔으로 전해왔다.
에미의 정을 듬뿍 받고 성장했다면 지금의 아들녀석이 더 좋은 모습으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추정 또한 화살이 되어 내 심장으로 파고 들어왔다.
‘큰 죄를 지은 거지. 그 어떤 사정이었건 이혼은 아들에겐 큰 상처를 안겨준 것이지.’
아무리 머리를 도리질 치며 아니라고 해도 분명 이혼이 아들에게는 큰 상처를 안겨준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그 죗값으로 내가 바다에 불시착하는 비행기에 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움보다는 담담함이 자리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일종의 체념 비슷한 것이었다.
처음 오키나와 여행을 가자고 아들녀석이 제안했을 때 참 흐뭇하고 아들에 대한 그간의 거리감이 좁혀지는 감동이 일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만사 제쳐놓고 아들녀석을 따라 인천공항으로 갔다.
일기예보는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했으나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항공사에서 끄느름한 날씨임에도 항공권을 팔 때는 비행기가 뜰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과 또한 아들과 함께 외국여행을 한다는 것이 기뻤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그 누구의 훼방도 받지 않고 아들과 함께 소통하며 그간 보이지 않던 벽도 허물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들뜬 마음으로 탑승 수속을 하려는데 태풍으로 비행기가 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내일은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갈까 하다가 영종도에서 묵고 내일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비행기 손님이 묵는 영종도 S호텔로 들어갔다. 태풍이 오는지 창문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꽤나 요란했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아버지, 오랜만에 아버지와 잠자리에 드니까 좋네요.”
“그래, 너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많이 데리고 잤는데….”
그저 대견하단 생각은 있었지만 내 성격상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아버지, 저는 아버질 다 이해해요. 엄마 없이 절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는 거 잘 알아요.”
“고맙다, 그리 생각해 주니.”
아들녀석의 입에서 그런 철이 난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의외였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와 무슨 이유로 이혼하셨어요. 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글쎄다. 핑계 같지만 고부간의 갈등 때문이었지. 할머니와 네 엄마와는 너무 맞지가 않았어. 내가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으니까 참 힘들었는데 결국 선택은 이혼이었지. 그 길만이 해결책이라 생각한 거지.”
“대충 짐작은 했었어요.”
“문제는 너한테 못할 짓을 한 거지. 이혼 그다음에 오는 문제를 깊이 생각 못한 건데, 그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저 지금 건강한 생활 하잖아요.”
“그래 고맙다.”
슬쩍 아들녀석 표정을 살펴보니 눈시울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아버지, 저도 오십을 넘기니 아버지를 이해해요.”
“네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니?”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긴긴 그간의 쌓였던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튿날 예정대로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3박 4일 여행 일정에서 하루를 그냥 까먹었으니 여행길이 바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키나와 공항 부근에서 렌터카를 빌렸다. 아무래도 태풍의 영향권에 있다 보니 불안했다. 다행히도 오키나와가 태풍의 눈 속에 들어가 있어 고요하긴 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순서를 바꿔 츄라우미 수족관을 먼저 보기로 했다. 세계적인 수족관답게 바닥에는 바닥살이가 있었고, 집채만 한 고래가 수족관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러나 정작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은 물고기들이 새끼들과 함께 줄지어 수족관을 누비는 모습이었다. 저런 하등 생명체도 새끼를 보호하는 본능은 인간과 빌밋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울림을 주었다.
츄라우미 수족관을 나와 1만 명이 앉을 수 있다는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만좌모를 거쳐 슈리성으로 향했다. 슈리성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사설 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슈리성을 관람했다. 아들녀석이 이렇고 저렇고 슈리성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내 귓전에서 맴돌 뿐이었고, 그저 아들과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가슴 뿌듯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발길을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이내 슈리성을 빠져 나왔다. 아들녀석이 주차한 차를 찾으러 가며 나에게 슈리성 앞 도로 갓길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다. 간간히 떨어지던 빗방울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차를 찾으러 간 아들녀석이 벌써 왔어야 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난감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걸 어쩐다지….’
일본말도 모를 뿐더러 지리도 모르고 무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고, 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마저 해질녘이 되니 점점 어두워지는데 걱정이 밀물처럼 덮쳐왔다.
‘혹시, 이 녀석이 나를 버리려고 이곳엘 데려왔나?’
의문부호의 고리가 머릿속에서 드레질하며 안 좋은 상상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그 옛날에는 고려장이라고 해서 나이 많은 부모를 외딴 산중에 내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는 얘기가 떠올랐고,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 부모를 모시기 싫은 자식이 외국여행을 함께 가서 버리고 왔다는 그 기사가 자꾸 떠올랐다.
‘이 녀석이 설마…. 그럴 리 없어. 아냐 그럴 수도 있겠지.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며늘애가 아들녀석을 꼬드긴 데다 이혼으로 인해 제 에미 정도 모르고 크게 했으니까 복합적인 이유로…. 아니지, 아닐 거야.’
긍정과 부정의 바람이 머릿속에서 으르렁거리며 부딪치고 있었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바람은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편하자고 자식에게는 불행을 심어 주었다는 자책감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의식으로 자리했다. 아들녀석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소풍을 간다거나 학부모가 대동해야 할 경우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소풍 때면 배낭에 먹을 것을 잔뜩 넣어 주는 것으로 대신했고, 운동회 때는 마지못해 학교에 가긴 해도 머쓱해서 서성이다 돌아와야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어린 자식에게 큰 상처로 자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춘기 때 미처 살피지 못해 아들녀석이 어떤 방황을 했으며 어떻게 보냈는지 상상조차도 해 보지 않은, 아버지로서 무책임한 사람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저런 지난 세월을 더듬어 보면 자식에게 나로서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점점 사방이 어둠에 물들어 가고 빗방울도 제법 굵어졌다. 그러나 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겨우 도로가의 큼직한 홍보판에 기대어 서서 아들녀석이 빨리 나타나길 눈이 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안 오는 걸까? 그럼 이제 어쩐다지….’
입 속으로 말을 삼키며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자꾸자꾸 아들녀석의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렇게도 나를 따랐고 무엇이었건 가르치는 그대로 매오로시 따라했던 아이였다. 그렇게 성장하다 사춘기 때부터 조금 몽니를 부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멀고 먼 타국 땅에 버리고 갈 녀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아니라면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설령 어찌어찌해서 집을 찾아간다 해도 그 이후 아들녀석과의 관계는 어찌될 것이며 그 관계 속에서의 갈등으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등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텐데 그것도 여간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고,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갑자기 소름이 끼치며 오스스 떨려 왔다. 그때였다. 어둠이 물든 신작로 저편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을 쏘아대며 승용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버지, 오래 기다리셨지요?”
내 앞에 차를 멈추고 아들녀석이 다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왜 이리 늦었냐? 난 네가 날 버리고 간 줄 알았어.”
“원, 아버지도… 제가 차 맡긴 주차장을 못 찾아서 헤매다 보니 늦은 거예요. 그렇잖아도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요.”
눅진눅진한 진땀을 흘리며 말하는 모습을 보니 사실인 것 같았다. 
해변가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세찬 비바람을 동반한 소낙비로 변해 끊임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소낙비가 아니라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비가 내렸고, 우리가 묵고 있는 2층 객실 유리창을 높은 파도가 세차게 때렸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티브이 일기예보는 태풍이 몰려왔으니 대비하라는 방송이 요란하게 떠들고 있었다.
“우리 내일 못 가는 것 아니냐?”
걱정스런 마음에 티브이에 시선을 꽂고 있는 아들녀석을 툭 쳤다.
“글쎄요. 그럴 것 같기도 해요.”
“난 괜찮은데 넌 회사 때문에 꼭 가야 된다며….”
“어쩔 수 없잖아요. 태풍 맞은 날씨가 이런 줄은 몰랐어요. 직접 겪어 보니 대단하네요.”
심각한 눈망울을 굴리며 고개를 갸우뚱 꺾었다.
밤새도록 창문을 두드리는 파도 소리와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 오는 소리가 겹쳐 흡사, 전쟁터에서 밤을 보내는 것 같았다.
아침 방송에서 비행기가 취항할 수 없다고 알려 왔다. 항공사로 연락하니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상 상태가 호전되면 오후에는 취항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 일단 공항으로 가시죠.”
“비행기가 못 뜬다는데 가면 뭐해.”
“그래도 공항에 가 있다가 뜨는 비행기 있으면 가야지요.”
“그래, 난 잘 모르겠다.”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결항으로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공항 로비에 가득 차 있었다.
젊은 녀석이라 그런지 몰라도 배낭에 넣고 다니는 노트북을 꺼내 놓고, 한동안 자판을 두드리더니 항공권을 구했다고 한다. 예약된 비행기가 아닌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였다.
“아버지, 저가 비행기인데 그나마 자리가 있으니 다행이에요. 항공사 이름이 피치항공이에요. 이렇게 피치 못할 때 타는 비행긴가 보죠?”
“아니, 피치고 뭐고 이 비행기는 어떻게 뜬다냐?”
“이 비행기만 취항하는 게 아니고 오후 세 시 이후에는 모든 비행기가 운항을 한대요. 그러나 결항이 겹치다 보니 항공권을 구할 수 없는 데 피치항공만 몇 좌석 남아서 구한 거예요.”
“그래서 공항 오자마자 컴퓨터를 쳤구나.”
“네에, 맞아요.”
예정대로 오후 3시가 되어 피치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태풍의 꼬리를 물고 비행기가 간다고 하니 살얼음판을 걷듯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한숨 좀 돌리고 졸음이 오는데 느닷없이 비행기가 바다로 불시착할 것 같다고 구명조끼를 입으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버지, 정신줄 놓으시면 안 돼요.”
내 손등에 얹었던 따스한 아들녀석의 손이 옥죄어 왔다.
“내가 너한테 많은 죄를 지은 것 같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다. 내가 왜 모르겠니. 너한테 지금 와서 무슨 말로 변명을 하겠니 미안하구나.”
“아버지, 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아버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거예요.”
“그리 생각하고 믿어주니 고맙다.”
나는 가슴 속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내기에 바빴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요동을 치듯 이리저리 아래로 위로 또는 무질서하게 흔들렸다. 그럴수록 공포감은 점점 더 쌓여 갔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가올 수도 있겠구나. 정해져 있는 원칙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니고, 예상치 못한 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인생사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기왕에 죽을 것이라면 그간 살아온 인생 가운데서 타인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또는 베풀 수 있었음에도 베풀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깊이 사죄하고 싶었다. 그런 사죄의 마음은 지나온 세월의 바닥으로 깊이 들어갔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냇가에서 멱을 감고 놀다가 장난으로 했지만, 조금 깊은 물속으로 밀어 넣고 골탕을 먹였던 일. 중학교 시절 힘없는 아이들에게 힘자랑을 했던 일.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클럽이다 뭐다 해서 괜스리 패싸움을 벌였던 일. 뿐만 아니라 몇몇 단짝들과 어울려 다니며 부모님들의 뜻과는 전혀 다른 말썽을 피웠던 일. 참으로 생각하면 자질구레하면서도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르며 성장했던 것이다.
군복무 시절은 일정한 틀에 갇혀 정해진 규칙대로 생활했으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군 제대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얼마나 많은 부딪침을 당하거나 행하면서 살아왔던가. 그야말로 삶이라는 것이 평온하지 않고 늘 이리저리 얽히고설키며 살아온 것이다. 그 가운데는 별처럼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정말 뼈아프게 성찰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난생 처음 사회생활 첫 걸음으로 시작한 것이 전자제품 대리점이었다. 본사로부터 지정된 곳이다 보니 이 지역에서도 단 하나뿐이라 수입이 짭짤했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직원들도 서너 명이나 되었지만 그들의 급여를 주어도 충분한 수익이 보장되었으니 신바람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 지나자 본사에서 또 다른 대리점을 내 사업 구역 내에 내어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대리점 규약을 어겨 가면서 억지로 구겨 넣은 단서 조항으로 내주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삼십만이 넘는 도시는 대리점을 추가할 수 있다는 새 규정을 적용했다고 했다. 나로서는 사업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 문제를 놓고 법정싸움까지 벌어졌으나 갑의 위치에 있는 돈 많은 본사가 이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대리점을 하나 더 내어줄 때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후 그 사업을 접고 대입 학원을 시작했다. 개강이 되자 학생들이 몰려들어 전자제품 대리점 사업보다 더욱 수입이 많았다. 학원에 오는 학생들을 다 수용하지 못해 구역을 나누어 하나 더 개설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 학원연합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그것은 지역 사회에서 나의 이름 석 자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다른 학원에 보이지 않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우리 학원은 학생이 넘쳐나는데 이웃 학원은 학생들이 적어 적자를 본다느니 학원 임대료도 못 낸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결국 나로 인해 다른 학원에 피해를 준 것이 아닌가. 왜 그토록 열심히 학생들을 끌어 모아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던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교육청이나 관련 기관에서 주는 표창까지도 모두 우선하여 받다 보니 다른 수상 후보자에게 낙선이라는 패배를 안겨준 것이 아닌가.
양보를 했다면 그들에게 기쁨을 안겨 줄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송두리째 빼앗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것도 죄가 된다는 것일까.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갖가지 이야기들이 모두 죄가 된다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결국, 날 나름 주의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몸이 옆으로 확 쏠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놀라지 마세요. 비행기가 기류에 휘말려서 그래요.”
아들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비행기가 난기류가 심해서 옆으로 쏠리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놀라지 마시고 안전벨트와 구명조끼를 한 번 더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 난기류를 피해 비행기가 하강하고 있어 앞으로 쏠리더라도 참고 하시고 바랍니다.”
안내 방송에서 말한 대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바다 한가운데였다. 나는 눈자리가 나도록 시선을 꽂았다.
“이거, 바다로 들어가는 것 아냐?”
이미 내 심장은 놀라움에 벌떡거리고 있었다.
“아버지, 아니에요. 너무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아들녀석이 제법 의젓하게 나를 안정시키려고 애썼다. 나는 말없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망막 속으로 지난날의 필름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었다. 강산이 한번 바뀐 세월에 만나니 모두 반가워하는 분위기의 동창회가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제각기 나름대로의 위치가 생겼고, 그런대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 또는 공무원이 된 친구, 자영업으로 돈을 번 친구 등등 가지각색이었다. 나는 그 모든 친구들보다 더 성공했다는 쥐뿔 같은 자만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못난 자만감은 친구들의 성공을 축하하려는 마음보다 무시하려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했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오만을 저지른 죄인가 반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왔던 모든 것이 죄를 지은 것뿐이었는가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 오므라들기만 했다.
조상을 받드는 일 또한 그랬다. 아버지는 유교 사상이 투철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제사나 시제 그리고 산소를 제때에 반드시 지켜 예절을 다 했다. 그 영향으로 나는 그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흉내라도 내며 따라했지만 속마음은 그것이 번거롭게 여겨져 사실은 억지로 그 예절을 지켜 온 것에 불과했다.
비행기 추락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상황에 다다르고 보니 그런 억지로 차린 예절 또한 조상에게 큰 죄를 지었구나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도 끝내 교회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던 것이 천벌을 받는가 싶었다. 더구나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고 빈정대었으니 하나님이 계신다면 천벌을 받고도 남을 일이었다. 결국 나는 어떤 잣대를 대고 재어 봐도 천벌을 면치 못할 것만 같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겨우 죄나 짓고 밥 먹고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리고 죽는다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이런저런 이유 없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믿어졌다.
진작 이런 이치를 깨달았다면 그날이 언제인지 몰라도 그날의 준비, 즉 죽음의 준비를 했을 것이라는 후회가 엄습했다. 죽음의 준비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나는 죽음을 앞둔 위기 상황 앞에서 죽음이 두려워 온갖 지난날의 잘못을 떠올리고 뉘우치며 죽음의 공포 앞에서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알 수 없는 절대자에게 내 목숨을 구걸하는 비겁자가 아닌가 싶었다.
‘왜 한 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았을까. 다시 한 번 인생이 주어진다면 아름답고 보람 있게 살아갈 텐데….’
깊은 한숨을 길게 토하자 아들녀석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나를 안정시키려는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비행기 흔들림이 적은 걸 보니 기류가 안정되었나 봐요.”
“그래, 그럼 다행이지.”
마음의 불안이 가신 건 아니었다. 다만 자식에게 애비의 이런 꼴을 숨기고 싶어 걱정 말라는 식으로 나직이 말을 받았다. 그러나 그 불안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자꾸 지난날의 잘못된 구석구석을 후벼 파고 있었다. 심지어 어린 시절 서커스 구경이 하고 싶어서 친구들과 서커스 천막을 면도칼로 찢고 구경했던 일까지 캐어 내었다. 아니, 그보다 더 자질구레한 일도 후벼 팠다. 옆집 살구나무에 돌팔매질로 살구를 따먹던 일도 무슨 큰 죄가 된다고 캐어 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더 웃기는 건 아버지가 막걸리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막걸리를 들고 오다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한두 모금 빨아먹은 일까지 들추어 내니 내가 세상 살아오면서 죄짓지 않은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다. 죽어야 마땅하다. 어쩌면 그래서 이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들녀석은 뭔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을 텐데 이런 천벌을 내리는가.’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에 그저 마음 편히 죽겠다는 각오가 섰다. 그래서였음인지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내 속을 모르는 아들녀석은 내가 조금 안정되었다고 생각되었는지 넌지시 물어왔다.
“괜찮다니까 그래.”
평온을 되찾은 나는 담담하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비행기가 흔들리던, 그러다 바다에 가라앉던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낮게 날던 비행기가 갑자기 하늘로 치솟는지 앉아 있던 의자를 뒤로 젖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몸이 뒤로 제쳐졌다. 감고 있던 눈이 스스로 번쩍 떠졌다.
“이게 뭐냐?”
놀라움에 나도 모르게 아들녀석에게 물었다.
“낮게 날다가 위로 오르는 것 같아요. 태풍 영향을 덜 받으려고 그러나 봐요.”
“너한테 일러두는데 세상 살아가면서 절대 욕심내고 죄 짓지 마라, 나중에 후회한다. 그리고 지은 죄는 모두 죗값을 치르게 되어 있어. 알겠니?”
비장한 심정으로 아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이었다. 세상 살면서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고, 결국 그 죄는 모두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누가 죄 짓고 싶어 짓는 사람이 있나요. 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식으로 아들녀석은 옆으로 머리를 돌려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허긴 지금 비행기 사고로 죽네 사네 하는 판에 점잖은 충고를 한다고 아들녀석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 혼자서 느끼는 감정이 넘쳐서 그런 말을 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얼마쯤 지나자 비행기가 수평으로 날고 있는지 앉아 있는 내 상체가 바른 자세로 돌아왔다. 물론, 그러면서도 비행기의 몸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금세라도 손에 잡힐 듯 검푸른 바다가 보였다.
‘저 바다로 추락한다는 건가?’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나도 모르게 구명조끼의 끈을 조였다. 그리고 넘실거리는 그 바다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바다에 추락한다고 해도 구명조끼를 입고 생존수영으로 넉잡아 한 시간만 버티면 구조된다고 하니까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불끈 치솟았다. 반면 악마의 입과 같은 저 깊고 깊은 바다에 빠지면 영락없이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긍정과 부정의 회오리바람이 윙윙거리며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때였다.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현재 시간 태풍의 진로가 갑자기 바뀌어 기상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이에 정상적인 비행을 위해 고도를 높이고 있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자 기내는 환호의 소리로 잠시 시끌벅적했다. 그와 동시에 비행기가 급히 하늘로 올라가는지 내 상체가 뒤로 심하게 쏠렸다.
“거 보세요, 아버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래 천만다행이다.”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던 가슴을 펴고 길게 심호흡을 하니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아버지, 이제 삼십 분 정도 가면 인천공항에 도착해요. 저도 말씀은 안 드렸지만 무척 긴장했어요. 모처럼 아버지 모시고 온 여행이 불행이 될까 크게 걱정했어요.”
“휴우….”
다시 안도의 한숨을 품어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는지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속도를 제어하려는지 비행기 날개가 수직으로 곤두서며 바람을 막으려고 흔들렸다. 나도 그랬지만 승객 모두가 공포에서 벗어나긴 했어도 아직도 상기되었거나 창백한 표정이었다.
아들녀석과 함께 입국 수속을 마치고 출구로 나오니 누굴 기다리는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카메라를 어깨에 받쳐 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아 기자들 같았다. 그리고 젊은 층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있었다.
“아버지, 왜 저런지 아세요? 우리가 탄 비행기에 아이돌 그룹이 함께 타고 와서 저 난리예요.”
“그래, 난 또 뭔가 했네.”
별반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공항을 뒤로하고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방금 아이돌 그룹이 있어 저 난리라고 했지? 저런 인기 있는 시간도 길지 않은 것이고, 그래 본들 뭐가 달라지는 게 있는 줄 아니? 다 소용없다.”
“무슨 말씀이세요?”
“내 말은 그런 것보다도 인생을 살면서 욕심 부리지 말고, 죄 짓지 말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무얼 부러워할 것도, 무시할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을 성공하는 길이란다.”
“아버지, 갑자기 도인이 되신 것 같아요.”
비행기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가면서 깨우친 내 마음을 아들녀석이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녀석아, 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서 한 말이야.”
집으로 가는 리무진 공항버스가 큼직한 몸체를 들이밀며 탑승장으로 들어왔다. 예약된 좌석에 앉으니 그제서야 내 마음에 도사리고 있던 놀란 가슴이 완전히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차창 밖을 보니 어느새 서쪽 하늘은 노을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머지않아 다가올 그 시간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준비를 해야겠다. 그 준비는 죽음에 대한 엄숙한 준비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껏 가슴에 움켜쥐고 있는 욕심과 못난 자존심에서 비롯된 자만심을 버리고 겸허해져야 한다. 이제부터 새롭게 태어나야 그 준비를 할 수 있고 그 준비가 있어야 내 영혼을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그 방법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종교를 갖도록 해보자.’
“아버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거예요.” 
“벌써 다 왔니?”
“그럼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글쎄다 무슨 생각한 것 같아?”
“그거야 제가 모르지요.”
공항버스를 버리고 여행용 가방을 끌고 아들녀석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드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귓전으로 파고 들어왔다.
“무슨 생각했느냐고 물었지?”
“네에.”
“우리 가족도 교회 나갔으면 하는데 우선 너와 내가 먼저 나가면 어떻겠니?”
“아버지는 갑자기 교회라니요?”
“그래 교회, 그게 어때서?”
“아버지, 갑자기 교회라니 그게 그렇잖아요?”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 테니 우선 아버지와 함께 교회 간다고 약속이나 해라.”
“글쎄요, 약속이고 뭐고 생각 좀 해볼 시간을 주세요.”
“그럼 그리 알고 있으마.”
나는 어떡하든 나와 같은 후회를 아들녀석에게는 심어 주지 않기 위해 그런 제안을 했다. 그러나 아직 젊은 아들녀석의 생각에는 나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방에 어둠이 묻히면서 바라다 보이는 곳곳에 교회의 빨간 네온 십자가가 나를 반기듯이 샛별눈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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