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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두

소설가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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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산실_김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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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TV의 볼륨을 낮춘 채 소파에 깊숙이 묻혀 『눈물과 보석과 별의 시인 김현승』을 읽고 있었어. TV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2주째 공습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는 5백 명이 넘고 1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발표하고 있군. 무한대해에서 키를 잃고 격랑에 휩쓸리는 쪽배 같던 30년 전의 우리나라 상황을 지구 어느 곳에서인가 다시 맞고 있어.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구르는 것 같아도, 물레방아처럼 시공을 넘나들며 윤회하고 있나 봐.
아까부터 찻물이 끓고 있었기에, 차를 한 잔 만들어서 다시 TV 앞으로 돌아왔어. 뉴스가 끝나고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역사물이 방송되고 있어.
통일신라 성덕왕 때의 이야기야. 이곳 청주(淸州)가 그때의 지역명은 서원소경(西原小京)이었대. 서원소경에 첫 사신으로 부임한, 지금으로 말하면 첫 청주시장의 딸의 러브스토리야. 사신의 딸은 왕자에게 시집을 가는데 왕자가 왕이 되고 그녀는 왕후가 된다고 해. 사신의 딸의 이름은 규목(槻木)이야. 예나 지금이나 눈만 돌리고 귀만 열면 남녀의 애정사가 들리고 보이는데, 1300년 전, 어느 선남선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가슴을 적시는군. 내가 왜 그 이야기 속으로 한없이 빨려드는 거지? 그녀는 실제 인물일까? 춘향이나 심청이처럼 고대 소설 속에 주인공으로 존재했던 허구의 인물이 아닐까? 차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사신의 딸이 웃고 있어. 아아, 나에게도 그런 찬란한 젊음, 열정적인 사랑이 있었는데….
나는 오늘 쉰 살이 되었어. 딱 부러진 100살이야. 100년 전만 해도 불혹의 나이면 긴 담뱃대를 물고 무릎 위의 손주 재롱을 낙으로 삼았다더군. 요즘 세상에서는 환갑이란 나이는 ‘젊은 노인(young old)’이라던데. 그러나 내 나이만큼 철이 든다거나 내 나이만큼의 분수에 맞춰 살고 싶지는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내가 노인 같아. 기다렸고, 결국 이 날이 왔어.
바람의 일렁임도 없는데 지붕 모서리에 달아놓은 풍경이 울려. 창밖으로 얼핏 사람의 기척이 스쳤는데. 우편배달부였나. 편지함을 열었어. 어머나, 네팔에서 보낸 내 딸 진아의 편지가 도착했네.
늘 그렇듯 안부 편지구나. 엄마는 잘 지내냐는 짧은 안부 밑에, 낮에는 국립병원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저녁에는 그곳 아이들에게 성경과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는 전갈이 들어 있구나. 그리고 엄마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아니 없더라도 남대문시장에서 연필 볼펜 공책 등의 문방용품이나 어린이들이 받아서 기뻐할 만한 머리핀 귀걸이 등의 장신구들을 좀 사고, 버려지는 유치원 가방 등등을 모아 보내달라고…. 엄마가 지금의 나만 했던 시대에 우리나라도 그랬듯이 여기는 아직도 물자가 부족해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격이 헐한 물건이랑 버려지는 물건들도 아주 가치 있게 그 쓰임새를 찾아간다고 했고. 교회에서 개발도상국가에 보내는 구호 봉사 물품에는 항공료를 할인해 준다는 설명도 곁들였구나. 주님의 은총 안에 자기는 너무 행복하며, 저를 낳아준 엄마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어. 이건 뭐지? 추신을 붙여놓았군. 반려가 될 남자를 만났다고? 동고동락을 맹세했다고? 오오, 사랑스런 나의 딸, 진아(眞娥). Jina.
나는 말 안 듣는 나쁜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딸은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으면 했어. 하지만 어쩔 수 없나 봐. 어느 모성이든 다 같겠지만, 나도 내 딸이 좋은 남자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안락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지. 진아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의대 공부를 했으니까 소박한 부와 명예도 누릴 수 있는데, 왜 저렇게 고행을 하듯 세계에서 가장 오지다 싶은 곳만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유전자 탓이겠지. 에효,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있을까.
나무 밑동을 감아 도는 시린 새벽 안개처럼 숨이 차가워지고 있어. 숨에 냉기가 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건강 검진의 결과가 이 암울한 느낌의 해답을 줄 거야.
지금이 내 삶의 최종 리허설은 아니야. 내 운명을 관장하는 절대자와 나와의 은원(恩怨)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이제 인생에 대해 조금 눈뜰 만해졌어. 난 앞으로도 말썽거리를 찾아다니며 전진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왜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게 되는지. 자꾸 기억을 곱씹게 되는지. 아니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드는지…. 그래서 혹시 유서가 될지도 모를 이 편지를 완성하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지.
갓 내린 어둠이 추억의 온도로 저녁놀에 스며들고 있어. 오늘 하루 짊어지고 온 예감이 언젠가 내가 예견했던 느낌과 딱 맞아떨어지고 있어. 내가 지나온 길에서도 빛나던 별들이 서서히 밤하늘에 잠수하는군.
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이유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청춘의 시절에는 달랐어. 자신에게 닥친 일의 원인도 알 수 없었고, 결과를 이해할 수도 없었지. 나는 젊었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으며 무엇이 되고 싶은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개의 방향타를 가지고 있었어.
청춘은 이상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안정적인 현실을 택하지는 않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 규범과 가치를 가진 이상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 청춘의 본성일 거야. 하지만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시대에는 서로 다른 이상이 제시되어 왔지. 실로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어. 세상을 향해 반항의 기치를 들고 싶었지. 특히 나 자신에게 모반하고 싶었어. 옆에 유혹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그래 청춘, 우리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소유할 뿐이고, 나머지 시간은 그것을 추억하며 사는 거야. 청춘이란 소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야. 누구나 청춘을 동경하고, 가버린 이십 대를 떠올리지만 그건 채 소진시키지 못한 열정에 대한 회한이 아닐까. 나의 내부에 아직도 퍼 올릴 광기가 남아 있을까.
사람이 노령에도 많은 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망상이야. 늙어서는 빨리 멀리 달릴 수 없는 것처럼 늙어서는 빨리 많이 배우고 익힐 수 없어. 청춘이란 과격한 노역에 적절한 시기야.
자신이 얼마나 실패의 좌절감과 상처를 의연하게 견딜 수 있는지는 경험이라는 뼈아픈 수업료를 지불하기 전에는 알 수 없어. 앞서 간 인생의 선배들이 아무리 주의하라 일러도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야.
흔히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결혼, 결혼하여 저지르고 부대끼며 기쁨과 슬픔을 맛본 사람이 말하는 후회와 아예 접근도 안 해본 사람이 말하는 후회가 어찌 같은 부피와 중량이겠어.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던 산악인이 후배에게 후회할 것이라며 등정을 말리는 것과 피상적인 정보와 간접 경험만으로 후회를 자신하며 만류하는 것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
아참, 돌이켜보니 나는 결혼한 적이 없구나. 또,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적도. 진아야, 아빠가 없이 너를 낳아서, 미안해.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말려서 미안해. 이즈음에 들어서야 세상에서 무엇이 무서운지 알게 되었고, 삶에 주의하는 법, 타인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웠지. 그걸 스스로 터득한 내가 참 대견해. 나 스스로 경험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거니까.
후회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2천 년 전의 공자님도 “요즘 젊은 애들은…”이라면서 혀를 차셨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요즘의 젊음은 지루해. 공자님 세대의 젊은이만도 못해. 난 젊은 날 아주 끝내주게 미쳤었어. 그랬어. 진실로.
하지만 꿈꾸고 희망하고 거칠게 도전하는 삶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랐지.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인식이라는 식은 숯 같은 생각들이 겹겹이 쌓이고 있어. 자 우리, 어느 세월의 모퉁이, 어느 기억의 갈피를 헤집어 볼까.
아아, 거기. 그날 그 시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신이 나에게 완벽한 타인과 함께 행복과 희열을 경험하는 축복을 내린 날.

 

2.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거의 기진해 있다가 맑고 신선한 바람이 볼을 간질이는 감촉에 눈을 떴어. 눈의 붓기와 울혈에 골머리가 지끈지끈했어. 운전석의 차창이 내려져 있었고, 그 차창으로 차갑고 액체로 여울져 흐를 것 같은 말랑말랑한 바람이 스며들고 있었어.
창밖으로는 언뜻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 나는 지금 제복의 남자에게 심문을 받다가 놓여나는 중이었거든. 속도 위반이라는 것 같았고, 운전석의 기사는 뒷좌석에서 잠든 내가 깰세라 소리 죽여 말했어.
“번호판 안 보여요? 누구 차인지 몰라요?”
그제야 상황이 판단되었어. 서대문경찰서는 나를 아버지에게 인계했던 거야. 나는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버지 차에 실려서 청주로 내려온 거였어. 나는 뒷좌석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어. 제복의 남자는 허리춤의 가방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내 뭐라고 쓰기 시작했어.
“누구 차인지 상관없습니다. 속도 위반하셨습니다.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는 120입니다. 서명하십시오. 이의 신청은 경찰서에 바로 하시면 됩니다.”
나는 경찰의 제복을 보자마자 속이 울렁거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어. 떨어진 플라타너스의 잎들이 물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아스팔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어. 며칠째 물 이외에는 아무 음식도 목구멍으로 넘기지를 못해서 뱃속이 비어 있었을 터이지만, 그래도 역겨운 대상을 보자 욕지기가 솟았어. 가로수 둥치를 붙들고 마구 게워냈지. 창자가 뒤집어지는 것 같았지. 미끈하고 뽀얀 나무줄기를 잡고 간신히 일어서는 데 옆으로 손수건이 건너왔어. 뽀얀 손수건을 받아서 입가를 훔치고 손수건의 주인을 바라보았어.
남성으로 느껴지는 남자를 이렇게 눈앞에서 부딪칠 정도로 마주친 적은 처음이었어. 후드득 놀란 가슴이었지만 지금도 그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선명하게 살아 있어. 가죽 장화를 신었고, 운두가 높은 제모 차양 아래의 눈은 사색하듯 깊었고, 눈썹은 짙고 뭉툭했으며, 콧날은 곧고 단정했어. 그리고 플라타너스, 지축을 뚫고 나온 듯한 커다란 플라타너스 줄기의 위세에 나는 압도당했어.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나갔어. 그 순간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열어 놓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어.
그때 그날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 가로수길의 플라타너스를 기억해. 그가 먼저였나, 플라타너스가 먼저였나, 김현승 님의 시 「플라타너스」가 먼저였나….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1)

 

이런 순간에 이성이 눈으로 들어오다니. 남자 뒤로 길 양쪽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잎들이 밑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바람에 하얗게 뒤집어지고 있었어. 플라타너스의 고독한 살 냄새가 났어. 다음 순간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경계의 갑옷을 주워 입으며 내 몰골을 훑어보았지. 며칠을 세수도 못했기 때문에, 머리에는 새 둥지가 들어앉았고, 눈두덩은 부어서 눈이 거의 떠지지 않았고, 윗옷의 단추는 다 떨어져서 앞섶이 열려 있었지. 그때는 몰랐지. 왜 신이 운명의 남자와 이런 몰골로 만나게 했는지.
나는 서대문경찰서에서 막 나오는 중이었어. 나는 내가 어떤 연유로 서대문경찰서에 잡혀 갔는지는 알았지만, 어떤 연유로 그곳에서 풀려나게 되었는지는 몰랐어.
나는 서울에서 대학엘 다니면서 자취를 하고 있었지. 1970년대에는 20대 초반의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대학생은 남녀를 통틀어서 7%였어. 서울의 사립대학은 우골탑이라 불렸지. 시골에서 소를 팔아 학비를 보낸다고 해서.
내가 다녔던 대학은 교훈은 ‘진선미’이며, 기독교 정신의 바탕 위에서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지도적 여성 양성을 위한 지성 공동체를 표방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 시절 여학생들은 대부분이 교양 있는 여성 개인의 완성이라는 화두에 젊음의 열정을 바치고 있었지. 대학의 졸업장이 혼수 품목의 하나였다고나 할까. 정치의 청정 구역이었고, 사회 변혁의 무풍지대였지.
그해 무르익은 가을이었어. 총학생회에서는 학우들을 선동하여 일깨웠어. 무풍지대의 불꽃이 기류를 타기 시작한 거야. 그날 일찍 등교한 학우들은 강의실 책상 위에 놓인 결의문과 검은 리본을 발견했을 거야. 결의문의 요지는, 과감하게 민주 수호의 구국 대열에 앞장서며, 민주 체제 확립, 언론·집회 자유 보장, 구속 학생 즉각 석방이 관철될 때까지 전 교생이 왼쪽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기로 한다, 였어.
검은 리본은 여대생들의 앞가슴에서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장 깃발처럼 펄럭였어. 검은 리본을 다는 순간 내가 유관순 열사라도 되는 기분이었지. 학생들은 교문 앞에서 검은 리본을 낚아채려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고, 리본을 빼앗긴 학생들은 학과 사무실에서 동대문시장에서 필채로 구입해서 무한 공급하는 리본을 곧바로 다시 달았거든. 학교도 우리 편이었어. 검은 리본은 유관순 열사의 피 묻은 검은 치마였어.
며칠 후 서대문경찰서를 처음으로 구경하게 된 날, 나는 아침부터 거사의 준비에 바빴지. 점심경, 채플 수업 끝 순서인 묵도가 끝나기 무섭게, 국민의 기본권 보장, 매판 자본의 퇴치와 민족 자주경제 체제의 확립을 위한 투쟁을 결의한 선언문이 낭독되었고, 대강당의 채플에 참석했던 대다수의 여대생들은 교문 밖으로 진출하고자 했어.
나는 예배가 끝나기 전에 교정을 빠져나가려고 후문 쪽으로 뛰는데 벌써 후문 근처에 평소 여자대학교 교정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낯선 남자들이 보였지. 주동자를 산채로 포획하려고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덫을 치는 경찰은 교수나 교직원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야.
수렵 시대부터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수집을 했지. 새끼들을 양육하고 둥지를 수호해야 했던 여자는 위험의 기미를 파악하는 촉이 남자보다 첨예했어. 주변 상황을 장악하고 다른 사람의 표정과 행동에서 사소한 변화를 감지하는 눈치도 남자보다 예리했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전조를 예감하는 예지 기능이 탁월하다고나 할까. 위험을 예고하는 경광등이 정수리 근처에서 맹렬하게 돌았어. 호젓한 뒷산으로 돌아서 옆 학교로 슬쩍 스며들 수도 있지만 숲속은 이미 사복 경찰들이 지뢰처럼 숨어 있을 것만 같았어. 학우 시위 대에 섞이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정문으로 향했어. 시위 대에 단순 가담자인 척 휩쓸려 다니다가 낙오되는 무리에 끼어 도망치는 작전이었어.
후문에서 다시 대강당 앞을 지나 정문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는데도 10분쯤의 시간이 흘렀어. 이미 예배를 마친 학우들이 대강당에서 골고다 길이라 불리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어. 교정과 학교 정문을 경계 짓는 곳은 호리병목 같은 다리였어. 세 겹 네 겹으로 대열을 이루어 바리케이드를 친 기동 경찰과 스크럼을 짠 학우 인파가 다리에서 대치하고 있었어.
그날까지는 적어도 정복을 입은 시위 진압대는 학교 안까지는 진입을 자제하는 양심은 있었지. 진압대는 여학생들이 교정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았고, 여학생들은 교문에 진을 친 기동 경찰의 방어막을 뚫고 거리로 뛰쳐나가려 했어. 경찰들은 학생들의 정문 돌파를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지.
시위 대에 섞이려고만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선두 대열에 있었어. 밀고 막고 밀고 막고…. 뒤쪽 대열에서 떠미는 힘과 앞의 경찰의 방패로 막는 힘 사이에 낀 학우들이 하나둘 질식해서 쓰러지기 시작했어. 축구 경기장이나 극장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려다 앞사람이 넘어지면 뒤따르던 사람은 진행을 못 하고 겹겹이 노적가리처럼 쌓이면서 앞사람은 짓밟혀서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식이지.
기동 경찰을 지휘하고 있던 사내가 마이크에 대고 외쳤어.
“학생들 다쳐요. 위험해요. 뒤에 있는 학생들 앞사람을 밀지 마세요.” 
학우들이 부르는 노래, 양희은의 <아침 이슬>이나 김민기의 <친구> 등이 하늘을 나는 새 떼처럼 멀리 멀리 날아가 퍼졌어.
경찰들은 페퍼포그로부터는 방독 마스크를, 날아드는 돌멩이들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철모나 방패 등의 장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여대생들에게는 아무 보호 장구도 무기도 없었어.
학우들의 함성이 높아지는데, 영화 속 전투 장면처럼 마치 기관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어. 그리고 잠시 후에 진군하는 병사처럼 뿌연 안개가 스멀스멀 몰려왔어. 어디선가 페퍼포그가 분사되고 있었지.
“학우들, 얼굴을 가리세요. 저기 빨강 5층 건물 옥상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요.”
시위 대열의 중간쯤에서 익히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어. 다리 건너 높은 건물에서 부감하는 카메라가 시위하는 학생들의 면면을 담고 있었던 거야. 필름에 기록될까 봐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날아와서 피부를 따끔따끔하게 쪼아대는 페퍼포그 가루를 막으려면 무엇으로든 마스크를 만들어 코와 입과 눈을 가려야 했어. 페퍼포그의 최루 효과는 대단했지. 고춧가루 푼 물을 눈에 부어넣은 것 같았으니까. 눈을 뜰 수가 없다며, 마치 장님처럼 손을 휘저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엉엉 우는 학우들도 있었어.
“현재 다쳤거나 시위 대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학생들은 이리 나오세요. 안전하게 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훈련이 잘 되어 있던 경찰들은 자기네 대열의 가운데를 열어서 길을 내었어. 앞은 기동 경찰들의 방패였고 뒤에서는 교문을 뚫고 거리로 나가기 위해 스크럼을 짠 학우들이 서서히 앞사람의 등을 밀고 있었거든. 방패와 학우 대열 사이에서 짓이겨져서 기절하거나 기절하지 않더라도 살려 달라며 애걸하는 학우들을 경찰은 하나씩 핀셋으로 뽑아내듯 집어내어 경찰차에 짐짝처럼 실었어. 나처럼 혼절했던 사람은 앰뷸런스에 실렸지.
기동 경찰대와의 대치를 끝내고 교내로 들어와 철야 기도회를 갖고, 구속 학생 석방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학기말 고사를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하고, 시위자에 대한 신변 이상이 발생할 때에는 단식 투쟁에 돌입한다는 서명에 모든 참석자가 서명했다는 소식은 세월이 제법 흐른 다음에야 자세히 듣게 되었지. 그 후 이 같은 시위와 기도회가 반복되었다는 것도.
학우들이 울면서 내가 탄 앰뷸런스를 쫓아오던 영상이 점점 희미해졌어. 깨어보니 경찰서 철창 안이었어. 나를 취조하던 계장쯤으로 보이는, 이마와 아래턱에 뼈와 근육이 가득 차서 매우 강인한 인상을 주는 형사가 내게 호통을 쳤어.
“학생, 학생이 여기가 아니라 청주에서 잡혔으면 학생의 아버지에게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운동 시위를 일선에서 꾸짖는 사람이 학생의 아버지에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요?”
나는 경찰서에서 의식을 회복한 후로 누구에게도 이름이나 학번도 사는 곳도 물론 가족 관계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나의 모든 이력에 대해 조사가 끝났었나 봐. 형사가 책상 위에 잡동사니가 가득 든 라면 상자를 올려놓았어. 내 자취방에서 가져온 물건들이었지. 내 방 벽지를 뜯어 왔는데, 벽지는 어지간해서는 지워지지 않는, 파라핀과 바셀린과 송진 등을 혼합해서 만든다던 등사 잉크 얼룩투성이였어. 집에 등사기만 있어도 잡혀가던 시절이라, 나는 동네 초등학교에서 등사기를 훔쳐다가 쓰고 다시 가져다 놓았어. 실은 동네 초등학교 필경사는, 등사기란 절대로 빌려줄 수 없는 물건이므로 등사실 문을 부실하게 단속을 해 놓을 테니 도둑질을 해서 쓰고 도둑질했던 흔적도 남기지 말고 원상으로 복귀하라고 했었지. 끝내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못 하고 말았지만. 
소파 방정환 선생도 등사기로 밀은 독립신문을 중학생들을 이용해서 돌리다가 일본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등사기를 우물에 버렸기 때문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 나왔다지 않아. 벽에 등사 잉크가 묻어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시위 대의 주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잖아.
시커먼 등사 원액을 먹인 얇은 등사 원지를 줄판 위에 놓고 철필로 긁어서 글씨를 쓴 다음에 등사판에 끼어 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리면 잉크가 배어나와 종이에 글씨나 그림이 나타나거든. 등사 원지 한 장에 철필로 긁어 글씨를 쓰는 데에는 1시간쯤 걸려. 등사 원지 한 장으로 약 500장을 복사할 수 있지. 등사기는 복사된 종이를 한 장씩 밀어내고 종이를 제친 다음 다시 밀어야 하는데, 한 장씩 찍을 때마다 철커덕 철커덕 소리가 나.
등사기의 소음이 하도 커서 집 밖으로 들릴까 봐 음악을 커다랗게 틀어 놓고 전단을 인쇄하고 있었을 때였어. 초인종이 울렸어. 후다닥 등사기를 치우고, 한껏 높인 라디오의 볼륨 때문에 초인종 소리를 못 들은 척 대문을 열어주지 않았어. 여차하면 옆집 담을 넘어 도망칠 태세를 갖추고, 문틈으로 내다보니 신문지에 쌓인 괴나리봇짐 같은 물건이 대문 안쪽에 떨어져 있었어. 겨울용 내의였어. 물론 필체가 남는 편지 따위는 들어 있지 않았어. 날이 추워질 테니, 감옥 안은 더욱 추워질 테니, 잡혀 들어가면 따뜻한 내의를 입고 견디라는 선배들의 갸륵한 뜻이 담긴 선물이었지. 눈시울이 얼마나 뜨거워지던지….
우리는 커다랗게 음악을 틀어 놓고 따라 부르면서 등사를 했었어. 무슨 노래였는지 알아? 클리프 리차드의 노래들이었어. 더 영원스, 비존스, 에버그린트리.
내가 여고에 다닐 때 클리프 리차드가 한국을 방문했어. 십 대 이십 대 여성들이 얼마나 열광했었는지, 그 잘생긴 미혼의 영국 남자에게 한국의 여고생들 여대생들 얼마나 미쳤었는지 몰라.
미국에 가서도 아니 지금도 나는 클리프 리처드의 노래를 들으면 콧날이 시큰해. 어깨의 통증도 느껴져.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 뒤편으로 철커덕 철커덕 한 장씩 찍을 때마다 등사판을 무겁게 들어 올리고 종이를 빼내야 했던 등사기 소음의 여운이 고막을 슬프게 울려.
형사가 다시 혀를 차며 물었어.
“네 행동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누를 끼칠지 걱정되지는 않더냐. 이 철없는 녀석아.”
반말 짓거리라기보다는 어른이 아이를 꾸짖는 어투였어. 상자 안에는 내 자취방에서 가져온 책이며 오려 둔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하여 모아 둔 노트도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1960년 4월 말,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한 여대생 부모의 글을 보여주었어.
“신문을 보면서도 사뭇 눈물이 북받쳐 견딜 수 없는 이 벅찬 역사의 마당에 하필이면 내 딸이 다니는 학교가 빠졌더란 말이냐. 서울의 거리가 온통 너와 같은 젊은 세대의 불길로 거세게 타오를 때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 그 피의 폭풍이 강산을 휩쓸고 낡고 썩은 것들이 너희 젊음 앞에 굴복하고 만 그 시각에 대체 너는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더냐? 분한 일이다. 네 젊음 스스로 모독한 시대의 고아가 되었구나.”
그 기사는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목포에서 서울의 여자 대학에 딸을 유학 보낸 아버지가 어버이의 심정을 토로하면서 4·19 행렬에서 빠진 딸을 포함한 당시 여대생들을 준열하게 꾸짖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 평범한 아버지가 쓴 글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천하명문이었어. 감동적이었고. 그 시절 그 상황에 처한 젊음을 충분히 고무시킬 만한 글이었지. 피 끓는 청춘의 복판에 있는 우리를 흠씬 취하게 만들었지.
그때 내가 다니던 여자 대학은 근대화의 뒤안길에서 가난으로 신음하던 이 땅의 숱한 여성들의 선망의 표적이었어. “네 어찌 배지를 달고 태양 아래 활보할 수 있으랴”고 그 여대생의 아버지가 말한 배지는 지성과 교양의 최고봉, 대한민국 제일의 여성 교육 기관의 상징이었어.
예나 지금이나 사회 운동을 하러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은 없어. 입학 후 우리 사회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고, 사회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게 되었지. 나는 사회의 부름에 부응했던 거야. 내 혼자만의 힘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지만, 커다란 불꽃으로 피어날 도화선에 점화의 불씨는 당길 수 있으리라고 믿었어. 순진하므로 감동하기 쉽고, 젊음의 피가 더운지라 실현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었어. 나는 이성의 광기로 타올랐던 거야.
계속되는 취조에 점점 추워졌고, 무서워졌고, 내가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가 하늘에 올라 있는 것 같다가, 꿈과 현실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간이 흘렀어.
그러다가 박하처럼 청량한 바람이 볼을 간질이는 감촉에 눈을 떴더니 그리 낯설지 않은 느낌의 승용차의 뒷자리에 실려 있었고, 차창 밖으로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흘러가고 있었어. 그리고 제복을 입은 남자에 의해 차가 세워졌고….
고개를 들자 시야에서 주변의 사물이 사라지며 홀로그램처럼 제복을 입은 남자가 떠올랐어. 입에서 떼어 낸 손수건을 보니 오물에 피까지 묻어 있었어.
“손수건은 세탁해서 경찰서로 가져다 드릴게요 경위님.”
그의 견장에는 무궁화 한 송이가 피어 있었지. 경위는 분명 나와 면식이 있는 표정이었어. 그의 기억 어느 부분엔가 내가 박혀 있었는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살폈어. 10년도 더 못 본 고향 친구를 우연히 대면한 듯한. 아니면 사람을 찾는다는 벽보 속의 가출한 여인이 나와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었던지. 아니면 자기네 경찰서에 내려와 있는 지명 수배자 사진에 나와 흡사하게 생긴 범죄 용의자라도 있는 모양이었어. 
그는 한동안 나를 뜯어보듯 샅샅이 훑고 있었어. 그 복잡한 시선을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하지만 다음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오토바이를 탄 그가 선뜻 내가 탄 차를 에스코트하여 아버지의 관사까지 데려다주었어.
아버지는 그해 봄에 청주로 발령을 받아 내려오셨어.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청주는 객지였어. 나는 아버지의 관사로 유배를 온 거야. 아버지가 계신 관사는 삼한 시대의 소도(蘇塗)처럼 죄인이 숨어도 되는 성역이었나 봐.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앓기 시작했어. 안전 지대로 숨었다는 해방감이 긴장을 풀어 주었던 거야. 죽은 듯이 잠에 빠져 몇 날 며칠을 보냈는지 몰라. 팔에 링거를 꽂았다는 사실은 팔에 나 있는 바늘 자국이 증명을 해주었어. 누군가가 입속으로 흘려 주는 유동 음식을 받아먹기도 했지. 빛도 어둠도 아닌 감미로운 혼돈 속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느낌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온통 하얀 세계에 있었어. 창문이 열려 있었고, 커튼 폭이 범선의 돛처럼 부풀어서 출항을 재촉하고 있었지.
누워 있는 내 얼굴 위로 하얗게 눈의 가루가 흩날렸어.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셨어. 나는 일어나서 커튼을 젖혔어. 새로운 하얀 세상으로 돛을 올리고 나아가야 할 것 같았어. 힘을 내자, 결심하는 순간 허기가 몰려왔어. 허기를 메울 음식을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나는 현관에서 가죽 장화를 올려 신고 있는 제복의 사내를 보았어. 허리를 펴던 그와 눈이 마주쳤어.
“아, 계셨군요. 좀 어떠세요?”
계단을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어. 두 번째 만남이었어. 나는 역시 산발한 머리에, 눈곱도 끼어 있었을 테고, 땀에 절어 고약한 냄새도 풍겼을 거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어. 나는 쥐구멍을 찾는 대신 그에게 말했어.
“잠시 기다려 주실래요? 손수건 돌려드릴게요.”
경황 중에도 손수건이 생각났어. 그리고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어. 바쁘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었어. 얼른 옷도 갈아입었어. 예쁘고 단정하고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었어. 서두른 티를 내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그는 아까처럼 정복에 가죽 장화를 신고 헬멧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부동 자세로 서 있었어. 나는 지금도 세상의 모든 경찰을 지독히도 싫어하는데, 왜 ‘그’는 예외인지 모르겠어.
첫사랑의 추억을 들추는 일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어. 사랑은 시한부야. 한 번의 연습도 없었던 첫사랑은, 인연의 엇갈림만 반복하다가 결국 사랑을 과거로 흘려 보내 버리거든. 치기 어린 자존심 싸움이나 수줍었던 망설임이 평생 가슴을 치는 통한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첫사랑이 연습 사랑으로 지나가 버린 다음에 깨닫게 되지.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유전하며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사랑의 감정은 결코 머무는 일이 없이 흘러간다고 누군가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청주의 관문인 진입로 가로수길은 경부고속도로 나들목에서 시내 초입까지 6㎞에 걸쳐 펼쳐진 플라타너스 터널이야. 그 가로수에는 청주 시민들의 꿈이 머물고 있지. 청주 한가운데의 플라타너스 나무는 콘크리트의 숲에서 생활하는 청주시민들에게 잃어버린 푸른 밀어를 속삭여 주거든.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우리에게도 신화를 만들어주었지. 그는 매일 찾아왔어. 나는 집에서 단 한 발의 외출도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와 함께라면 예외였어.
우리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 가로수길을 걸었어. 이렇게 아름다운 진입로를 가지고 있는 도시는 전국에서 청주뿐이래. 하지만 가로수길을 손잡고 걷는 연인들은 3년을 못 넘기고 헤어진다는 괴담이 횡행하고 있었지. 자기네 잘못으로 헤어진 연인들도 ‘가로수길을 함께 걷는 연인들은 깨진다’는 속설이 첫사랑 연인을 갈라 놓았다며 탓하고는 했어.
옛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다. 할아버지가 나무를 해서 장에 갖다 팔아서 먹고 살았는데, 장에 가려면 삼년고개라는 고개를 넘어야 했다. 삼년고개는 그 고개에서 넘어지면 삼년밖에 못 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나무를 해서 장에 가다가 그 고개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난 삼 년밖에 못 살게 생겼구나’ 하고 고민을 하다가 급기야 병석에 눕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고개에서 넘어진 지 삼 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와 할아버지가 앓고 있는 사연을 물었다. 할아버지가 삼년고개에서 넘어져 삼 년밖에 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청년이 웃으면서 “그러면 한 번 더 넘어지시면 삼 년 더 사실 것이고, 또 넘어지시면 육 년 더 사실 것 아닙니까” 하고 말하였다.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삼년고개에서 매일매일 굴렀다. 그래서 오래오래 살았다. 믿거나 말거나,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이 고개에서 매일 굴렀다고 한다.
“삼년고개에서 넘어지면 삼 년밖에 못 산다는 강박관념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에요. 그 치유법이 두 번 넘어지면 육 년, 세 번 넘어지면 구 년, 하는 자가 세뇌예요. 그래서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생겨난 거죠. 이 가로수길의 아름다움을 시샘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그런 괴담을 지어냈을 거예요.”
그가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어.
“그렇다면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을 손잡고 세 번 걸으면 구 년, 네 번 걸으면 십이 년…. 매일 걸으면 죽을 때까지 사랑이 깨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악명이 높은 괴담도 가로수길에서 우리를 내쫓지는 못했어. 플라타너스의 나뭇잎은 미풍에도 감상적인 여인처럼 가늘게 진동했지만, 대지에 떡 버티고 서서 하늘을 찌르며 기지개를 켜는 웅장한 모습은 그대로 장부의 기상이었어. 우리는 괴담을 극복하고자 매일매일 그 길을 걸으며 스스로 세뇌를 했어. 이미 겨울이었고, 태양의 빛이 쇠잔해지면서 플라타너스도 낙엽이 졌어.
“플라타너스도 인고의 겨울을 나면 어린 이파리가 돋아서, 우리처럼 이 가로수길을 걷는 연인들에게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주겠지요?”
나는 바보같이 그와 헤어지리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아버지가 묵으시는 수곡동 관사는 치외법권 지역이었어. 대문 옆에는 순찰함이라고 쓰인 나무로 만든 작은 우편함 같은 상자가 달려 있었어. 순찰함에는 자그마한 자물통이 달려 있었는데, 하루에 한 번 순찰 도는 경찰이 순찰함을 열고 순찰일지를 꺼내 서명을 하고는 했어.
그는 나를 수곡동 관사까지 보디가드처럼 데려다주고는 순찰함에 서명을 했어. 아마 그는 나를 보호한다기보다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나 봐. 나는 그가 젊은 남자로서 나에게 반해서 근무 시간 중에도 마구 찾아오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 나는 감시 대상 1호였고, 여차하면 잡혀 들어갈 지명수배자였나 봐.

 

3.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아버지가 머무시던 관사에는 아버지의 애장품인 멋진 물건들이 많았어. 일테면 담배 파이프라든지, 또 볼사리노 상표의 중절모자를 비롯한 모자들도 있고, 가보로 물리겠다고 하시는 바둑판도 있었지.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어. 그 즈음 담배를 끊는 중이었어. 끽연 습관을 그리 쉽게 단절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평소에 담배를 놓아두던 장소, 서재의 책상 위, 응접실의 탁자 위, 안방 침대의 사이드 테이블 위에 파이프를 하나씩 놓아두셨어. 담배가 피우고 싶어져서 무의식적으로 손이 뻗어나가면 손에 파이프가 잡히도록 말이야. 허전한 손에 쥐어진 담배 파이프를 심심한 입에 무시는 거지. 담배를 잡았던 손과 입의 허전함과 심심함을 파이프로 달래고 계셨어.
그중 장미목으로 만든 파이프를 가장 아끼셨어. 나도 심심할 때면 손으로 쥐어보고 코로 큼큼거렸지. 나무의 향기와 파이프 잎담배의 구수한 냄새가 참 좋았었지.
그리고 가문의 보물로 물리시겠다는 애장품 바둑판은, 두께가 한 뼘쯤 되고, 반재가 나이테가 고른 비자목이었어. 나이테가 사이 공간에 비해 단단한 비자나무라 결이 곧게 마름질되어 준수하게 잘생겼다는 느낌이 들었지. 바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출중하게 잘생긴 비자나무 바둑판 하나 가지는 게 소원이라고 해. 비자나무는 연하고 탄력이 있어 바둑을 두세 판 두면 겉면이 곰보처럼 얽어. 바둑알로 두들겨 맞으면 옴폭옴폭 패인 자국이 남는 것이지. 하지만 하룻밤만 젖은 수건을 덮어두면 반면은 다시 본디대로 평평해지는 탄성을 가지고 있어. 비자나무를 바둑판 목으로 삼는 이유는 오로지 이 유연한 탄성 때문이야. 비자반의 반면에 바둑알을 놓을 때, 맑은 소리가 나며 살짝 튕겨지는 부드러운 탄성의 감촉은 어느 나무도 따를 수가 없어. 비자목 바둑판은 일등품 위에 한층 뛰어난 특등품이 있어. 반재며, 치수며, 연륜 등이 일등품과 다를 바는 없으나, 특등품은 얼굴에 머리카락 같은 가느다란 흉터를 가지고 있지. 상처가 있어서 값이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비싸진다는 사실은 좀 아이러니하지.
비자나무 바둑판이 사고를 당해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의 성질 여하에 따라서 일등품이 특등품으로 격상되거나, 낮잠을 잘 때 베고 자는 목침으로 전락하는 거야. 회생할 여지가 있을 정도의 균열이라면, 갈라진 틈으로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직이 촘촘한 수건으로 싸고 뚜껑을 덮어서 습한 곳에 간수해. 그리고 침착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해. 1년, 2년 혹은 3년까지 조용히 저 혼자 상처를 치유하도록 놓아두는 거야. 계절이 바뀌고 추위와 더위가 차례로 순환하면, 그동안 상처가 났던 바둑판은 제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여 본디대로 유착하고, 머리카락 같은 희미한 흔적만이 남는다는군. 이런 균열의 흔적이 있는 바둑판을 특등품으로 치는 까닭은 그 회복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야. 치명적 불구의 비자나무가 험한 시련을 이겨내면 되레 특등품으로 격상되는 거야. 아버지는 머리카락처럼 가는 균열 흔적이 나 있는 비자나무 바둑판의 자연 치유 능력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지.
아버지가 날 부르셨어.
아버지는 바둑판을 앞에 놓고 앉아 계셨어. 왼손으로는 파이프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물푸레나무 바둑알통에 손을 담그고 계셨지. 자그락자그락, 아버지의 주먹 안에서 바둑알들이 가볍게 부딪치며 맑은 소리로 울었어.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어. 나는 오래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기에 발이 저려서 자세를 바꾸려고 몸을 틀었어. 얼핏 고개를 들었다가 아버지의 눈가에 맺혀 있는 물방울에 시선이 묶여버렸어. 순간 물컹한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을 치밀고 올라왔어.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아버지는 바둑알 한 움큼을 집어 바둑판 위에 올려놓으시며 낮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어. 나는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수십 번도 더 들었을 아버지의 훈계들이 생각났어. 고려 태조가 왕실의 후손들에게 내린 유훈(遺訓)으로 훈요십조(訓要十條)가 있듯, 아버지도 가족에게 가훈의 성격을 가지는 말씀을 늘 하셨어.
“나는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공무원이다. 공무원의 가족은 혈연보다 동지로 결연되어 가장의 일을 동지적 차원에서 도와야 한다. 공무원은 늘 뇌물이나 부정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데, 자식들이 혹은 아내가 공무원 가족으로 분수를 넘어서는 요구를 한다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약한 가장은 그런 유혹에 빠지게 된다.”
공무원 가족으로 동지적으로 공무원을 도우며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제 1조에 이어 2조가 있었지.
“첫째는 실력, 둘째는 용감, 셋째는 청렴결백이다. 실력을 갖추고 불의에 용감하게 대항하며 청렴결백하게 살아라.”
그리고 딸에게는 실력, 용감, 청렴결백에 더하여 ‘순결’을 교육하셨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머리를 무릎 사이로 묻었어.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다. 언제 어디서나 과오를 범할 수 있다. 아무리 고매한 인격, 학식, 지위가 있다 한들, 거북이처럼 오래 살아서 충분한 경험으로 인생의 수업료를 지불했다 한들 과오를 범할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느 의미로는 인간의 일생을 과실의 연속이라고도 볼 수 있다. 너처럼 아직 인생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젊은이들은 더욱 과오를 범할 확률이 높다. 자신이 다치는 과오도 있고, 남을 도와주려다가 남을 다치게도 한다. 별의별 과오가 다 있겠지. 보상할 방법과 기회가 있는 과실도 있고, 교통사고처럼 순간적인 실수로 자신과 남의 육체를 심하게 훼손하는 불치의 과오도 있다. 실수로 남의 집 유리창을 깨거나,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까지는 상처를 입는 작은 과실에서부터, 잠시 잠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인명을 손상하여 일생을 암흑 수렁에 파묻어 버리는 큰 과실도 있다.”
아버지는 긴 숨과 함께 말을 끊으셨어.
“너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려 하지 않느냐. 네가 대학을 들어갔을 때 이 애비가 부탁한 것은 단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마초를 비롯한 마약의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이며, 또 하나는 공무원의 딸로서 적어도 현재의 사회와 정치 체제를 부정하는 사회적인 활동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너는 네 인생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다른 가족의 인생까지 진창으로 몰아넣을 뻔했다.”
긴 침묵이 흘렀어. 설령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해도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를 낼 만큼 고요했어. 나는 이마를 방바닥에 댄 채로 끓어 엎드려 있었어.
“일단 한국을 떠나라. 거역한다면, 떠나지 않는다면, 내가 널 단죄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딸을 믿는다. 과오로 생긴 균열을 자신의 유연한 탄성으로 치유한 비자나무는 특등품으로 거듭났듯이….”
아버지는 다시 또 한 번 말을 끊으셨어. 울컥울컥 울음이 넘어왔어. 
“너의 실수를 만회하고 돌아오리라 믿는다.”
한 무더기의 찬바람을 느끼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버지는 방을 나가신 뒤였어. 비자나무 바둑판 위에는 여권과 비행기 탑승권, 그리고 영어로 된 여러 가지 서류들, 암만의 미화가 든 누런 봉투가 남겨져 있었어.
그리고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어.
사랑하는 내 딸 진아야.
몇 년 전이던가,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인데, 어떤 미국 남자가 세상의 모든 남자를 대표하여 ‘아버지가 안 될 권리’를 주장하며 소송을 했어.
여자는 자기 몸에 생긴 태아를 태아의 아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낳을 수도 있고, 낳아서 입양을 보낼 수도 있고, 낙태를 할 권리도 있어. 그런데 남자는 자신의 아이가 만들어졌는지도, 탄생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아이에게 꼼짝없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아이의 엄마가 아이 아빠의 의지에 반해서 엄마 혼자서 출생한 아이의 양육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지. 판사는 이런 어이없는 소장을 재판에도 회부하지 않고 기각시켜버렸어. 인간의 생명이란 잉태되는 순간부터 부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었지.
진아야, 미안하구나.
네 아버지야말로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내가 가족과 학우들과 조국을, 네 아버지에게서도 떠나야만 했던 뼈아픈 사연을, 네 아버지에게 알릴 수가 없었으니까.
창밖에 초승달이 떴구나. 미황색의 달빛이 어슴푸레 창문을 비추고 있구나. 너에게 꼭 전해 줄 물건이 있어. 내가 평생을 간직하던 그 물건을 너에게 물려야겠구나. 네 아버지가 나에게 프러포즈를 하던 날 내 목에 걸어 준 목걸이야.
“어머니께서 임종하시면서 제게 주신 물건이에요. 훗날 제 앞에 이 목걸이의 주인이 나타나면, 그러니까 제가 결혼할 여자가 나타나면….”
그는 헌헌한 사내 대장부였음에도 여인네처럼 수줍음을 타느라 말끝을 감추었지. 초승달 모양의 금목걸이였어. 그는 내게 하늘의 달을 따 준 거야. 달은 노랗고 환하고 반짝반짝 빛이 났어.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낡아서 박물관 진열장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 같았지. 뒷면에 두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는데, 한 글자는 나무 목(木)자였고, 나머지 한 글자는 심하게 훼손되어 읽을 수가 없었어. 나는 20년 넘게 그 글자를 해독하려 노력했고, 오늘 드디어 TV를 보면서 답을 풀었어. 그 글자는 규목(槻木)이야. 통일신라 성덕왕 때, 서원소경(西原小京)에 처음 부임한 사신의 딸 이름이야. 규목.
오늘 뉴스에 ‘그’가 나올 줄 알았어. 그래서 아침부터 TV를 켜놓았지. 치안감이래나. 무슨 지방경찰청장으로 퇴임을 한다는구나.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끝으로 정든 경찰을 떠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격변기를 몸으로 겪었습니다. 그동안 조국과 경찰은 괄목상대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퇴임합니다. 경찰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명 존중’이라는 절대 가치를 우선시해야 하며….”
그에게도 풍상이 닥쳤겠지. 그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구나. 회환의 눈물일까.
진아야.
작별도 못하고 보내버린 청춘은 돌이킬 수 없어졌고, 또한 횃불처럼 지펴졌던 정열은 재처럼 사그라졌구나. 우리의 실체는 불멸하는 영혼이 아닐까. 육체는 잠시 머물다 가는 집일 뿐. 아마, 혼이 들어 있는 인간은 그리 쉽게 쓰러지지는 않을 거야.
내가 지금 검진의 결과를 기다리기는 해도, 전문의가 내게 시한부 인생임을 선고한다고 해도, 나는 춤을 배우고 싶어. 여행을 떠나고 싶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고 싶어. 세상의 어느 용감한 여행자도 저어했던 한계선을 넘는 도전을 하고 싶어. 고상하고 우아하게 늙어가기보다는 더 많은 실수를 하며, 또 그 실수를 극복하며 거칠게 살고 싶어. 그리고 힘닿는 데까지 너의 일을 돕고 싶어. 네가 동고동락을 맹세했다는 청년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도 보고 싶어.
난 아직 심장이 뜨겁거든.

 


1) 눈물과 보석과 별의 시인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

 

<참고자료>
*1, 2, 3장 제목은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 중에서 발췌.
*NAVER 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
*경향신문 (http://www.khan.co.kr/) 2003.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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