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2월 6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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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37년, 15권의 저서를 낸 나는 이제 ‘쓰기의 습(習)’으로 사는 사람이다. 내 창작의 산실을 묻는다면, 한 장소의 좌표보다 한 장의 호흡, 한 순간의 결심을 먼저 말하고 싶다.
눈발 속에서 시작된 첫 산실
고2 때였다. 겨울방학이 2주 남아 있던 겨울, 일요일이었다. 나는 서울 애들이 시골이라고 말하는 전주(全州)에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집에 가 버린 기숙사는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난방이 꺼진 1층 방에서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시골집의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너 뭐 하니? 너 소설 써?”
볼에 닿는 더운 입김을 느끼고서야 나는 깜짝 놀라서 뒤집어썼던 이불을 내렸다. 나는 그 애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 교지에 실린 그 애의 소설을 읽었기에 그 애가 우리 학교 문예반장이며 나처럼 기숙사에 머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니, 엄마한테 편지를 쓰고 있던 중이야.”
“원고지에? 나처럼? 너 문학하니? 소설?”
기숙사 우리 방에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창문과 옆 건물의 검은 벽은 손을 뻗으면 닿았다. 그 좁은 건물 틈으로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은 더러운 먼지 낀 창문에 달라붙으며 재색 성에를 만들어냈다. 검은 벽으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을 쳐다보던 그녀가 말했다.
“우리 동작동 국립묘지 갈래? 눈 오는 날 군인들 묘지, 참 좋아. 나 코트 걸치고 내려올게.”
내 외출 준비품은 원고지 몇 장과 연필, 버스표 두 장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코트 주머니에도 둘둘 말린 원고지 한 뭉치가 들어 있었다. 눈은 여전히 하염없이 내렸고, 뿌옇게 흐린 시내버스의 유리창을 몇 번인가 닦아내자, 버스 안내양이 “동작동 국립묘지 내리실 분”을 소리쳤다.
묘비들은 바둑판의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점에 바둑알처럼 도열하고 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며 눈송이가 커지기 시작하자 그녀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빙빙 돌면서 눈을 받아먹다가,
“너 알아? 저 머언 곳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하고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김광균의 시 「설야」 중에서 바로 그 하이라이트, 가슴 시린 그리움과 쓸쓸함, 잊지 못할 추억과 회한을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대목을 읊조렸다.
우리는 코트 주머니에서 둘둘 만 원고지와 연필을 꺼내, 곱은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그날의 눈’에 대해 적었다. 젖어 번진 글씨였지만, 그 단상은 독서신문 ‘독자의 글’에 실렸다. 내 글의 첫 산실은 그 눈발, 국립묘지 행 버스의 김 서린 창, 그 낯선 묘역의 침묵이었다.
사전과 만년필의 시절
첫 책을 냈을 즈음 아버지는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과 몽블랑 만년필을 사 주셨다. 나는 원고지를 한 장 메울 때마다 그 두꺼운 사전의 갈피를 헤집었다. 손님용 찻상을 가져다 따로 올려놓아야 할 만큼 사전은 크고 무거웠다. 오른손 가운데손톱 옆의 살이 패이다 못해 손가락이 휘어질 만큼 손글씨를 쓰던 시절이었다. 단어 하나의 결을 고르고, 어휘 하나의 체온을 재던 시절, 산실은 책상 위에 엎드린 내 몸과 사전의 무게였다.
도구는 길, 문장은 발걸음
지금 내 서재에는 PC와 노트북, 태블릿과 복사기가 있다. 그러나 퇴고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펼치고도 사전을 켠다. 문명의 도구들은 길을 열어 줄 뿐, 문장을 대신 불러오지는 않는다. 전철에서, 설거지 중에, 산책길에서 나는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눌러 말을 걸고, 돌아오는 답을 녹음으로 기록한다.
마감이라는 심장 박동
인터뷰 기자가 “언제 글이 잘 써지나요?” 물을 때 나는 종종 이렇게 답한다.
“머릿속에서 와글거리던 것들이 마감 시각을 넘기는 순간, 신들린 듯 풀릴 때가 있어요.”
내 산실에는 늘 ‘마감 기한’이라는 멈추지 않는 심장 박동이 있다.
모든 곳이 산실이 되는 순간
소설가는 대개 전업으로 산다. 그러나 ‘전업’의 본질은 어느 장소에서도 문장을 기어이 불러내는 태도에 있다. 산실은 집필실만이 아니다. 눈 내리던 묘지의 공기, 국립묘지 행 버스창에 어린 성에, 젖은 원고지에서 번지던 글자, 사전의 두께와 무게, 마감 직전의 숨 가쁨—그 모든 곳이 내 산실이었다. 펜을 쥐고 앉은 책상은 하나지만, 쓰기를 결심한 순간마다 세계는 산실이 된다. 그러니 내 창작의 산실은 오늘도 한 장의 원고지, 주머니 속 연필, 그리고 지금 이 문장에 닿아 있는 나의 더운 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