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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독서 습관은 나의 창작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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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훈

아동문학가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1월 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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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산실_홍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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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대포리 737번지에서 아버지 홍건표, 어머니 황필봉의 2대 독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일본군에 징병으로 끌려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화병으로 피를 토하며 돌아가셨고, 집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두 명의 청상과부뿐이었다. 그때 나는 한 달도 안 된 핏덩이 갓난아기였다. 스물한 살의 꽃다운 젊은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보따리 행상을 다니셨다.
내가 글에 눈을 뜬 것은 5살 때이다. 할머니는 엄마 얼굴도 온종일 못 보며 혼자 지내는 나를 일찍 서당에 보냈다. 나는 글자를 모르지만, 구석에 앉아서 그냥 따라 했다. 몸을 앞뒤, 좌우로 흔들면서 리듬에 맞추어 따라 하는 것이 재미가 있어서 매일 서당에 갔다.
한 세 달쯤 지난 후 훈장이 내게 천자문을 한번 외워 보라 했다. 어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전부 외웠더니 모두 깜짝 놀랐고 신동이 나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날 상품으로 화선지를 받아오니 할머니는 기뻐서 펑펑 우셨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집안 사정을 잘 아시는 담임선생님께서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서울에 국립체신고등학교라는 학교가 있어. 국립이라 특차로 전국 수재들과 경쟁해야 하지만 그 학교에는 장학금도 받으며 기술도 배울 수 있다. 너는 영리하고 공부도 잘하니 너 같은 인재를 키우는 곳이야. 합격한다면 너뿐만 아니라 우리 중학교에도 큰 영광이 될 거야.”
그 말에 마음을 다잡고 전국의 뛰어난 학생들과 경쟁한 끝에, 다행히도 국립체신고등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때 이천중학교에서는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여 축하 잔치를 열어 주었고,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쁨으로 남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임용시험을 거쳐 19살에 5급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5월에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30여 년을 근무했다. 동아일보사에서 근무한 30여 년은 내 인생에 가장 활동적이고 의미 있는 전성기로 열심히 일했다. 동아일보사 김상만 회장님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이 외롭게 자란 나에게 아버지 같은 따뜻한 사랑을 주셨다.
나는 입사 후 동아일보사 김상만 회장님의 각종 기념사와 축사 등을 10여 년간 대필하였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을 비롯하여,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모스크바 필하모닉 교향악단, 로열 발레단, 볼쇼이 발레단 기자회견 등 모든 행사의 사회(司會)는 물론 사내 방송까지 도맡아 하였다. 또 대통령이 참석하는 창간기념식이나 인촌상 시상식 사회도 보았는데,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서는 한마디를 넣고 빼는 것도, 한 단어 한 문장이 신문사를 대표하는 말이고 언어였기 때문에 극도의 신경을 써야 했다.
업무가 모두 끝나고 직원들이 퇴근한 후, 나는 홀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회장님의 기념사와 축사, 각종 행사 원고를 준비하기 위해 책을 뒤적이며 자료를 찾아 밤을 지새웠다. 딱딱하고 경직된 행사 진행을 부드럽게, 유머와 격언 등을 적당히 섞어 사회를 보기 위해서 『채근담』과 『명심보감』 같은 고전에서부터 고사성어, 명언, 속담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의 치열한 독서 습관이 오늘날 나의 창작의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회사 승강기에 당시 유행하던 일일일언(一日一言)의 명언을 매일 써서 붙이는 일까지 하였다. 방송국과 신문사를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서 문장 글에 온 정성을 들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문 중독이 되어 손에서 신문을 놓지를 못한다. 돌이켜보면, 동아일보사 6층의 남쪽 구석 8평 남짓한 내 사무실 작은 공간이 나의 문학적 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홍성훈]
경기도 이천 출생.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신문방송학과·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졸업. 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 회장, 한국아동청소년문학협회 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문학의집·서울 이사, 한국타고르문학회 회장. 저서 『아버지를 사가세요』 『남편을 팔았어요』 『피자 나오셨습니다』 『하늘이 화났어』 등. 한국신문협회상, 한국문협작가상, 국제PEN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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