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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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문단 등단 40년이 넘는 해이다. 인생의 반을 시인으로 살았으니 나의 대표적인 명함은 시인이다. 1984년 월간 『시문학』에 문덕수 선생님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그 기쁜 마음으로 미래를 다짐하면서,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열심히 시를 쓰고 시집은 3년에 한 권씩 꼭 출판하리란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현재 13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 그리고 시선집이 나의 수확이다.
여든 해가 다가오는 지금도 종횡으로 바쁜 시인으로 한국 문인협회 시분과 회장을 거쳐 현재 부이사장으로 뛰어다닌다. 이런 활동적인 시인 활동 배경은 고향 경북 포항의 청하 땅의 산자수명(山紫水明)함과 내연산의 아름다운 사계와 월포 바다에서 아침마다 맞는 동해의 해맞이이다. 또 나의 시심과 꿈과 희망의 원천은 변치 않고 철석이며 밤낮으로 우- 하고 밀려오던 파도 소리라 하겠다.
파도의 역동성과 지속성은 나의 성격 형성에도 큰 역할이 되었다.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던 성장기에 문학적인 소양이 배태되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일기 쓰기로 담임 김문열 선생님의 총애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재미를 얻게 되었다. 또 봄, 가을 소풍은 왕복 20리 길 넘는 천년 고찰 보경사로 다니면서 자연과의 친화력을 익힌 추억들이 자산이 되었다. 부산에서 여고 시절엔 학교 도서관에서 기초적인 독서와 문예반 생활로 교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대학 시절엔 부산 광복동 ‘시공관’에서 문재구 교수님의 주선으로 시화전에 참가하는 등 문학 습작과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졸업 후 곧 남해와 밀양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결혼한 후 꿈과 현실에서 끊임없이 또 다른 무언가를 갈구하며 각종 주부 백일장을 휩쓸고 다녔다. 백일장 초창기 수상자들을 모아 ‘영남여성문학회’를 결성한 활동이 나의 습작기로 문단 등단에 기반이 되었으며 그 모임은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올바른 삶 속에서 올바른 글쓰기가 이루어진다는 문학 일반론이 깊게 자리 잡아 생활인으로 일인 다역에 주력하던 시절이었다. 여가를 쪼개어 습작하던 때다. 길 위나 생활 속에서 시어를 찾는 순간들이었다. 시어를 찾아 한 편의 시를 쓸 때는 이 방, 저 방을 옮겨 가며 식구들이 잠든 사이 웅크리고 베개를 괴고 시를 쓰던 곧 그 자리가 내 창작의 산실인 셈이었다.
한때 문학의 산실을 꾸미겠다는 생각으로 십여 년간 공들여 책을 모으며 무게가 걱정되어 철재 책꽂이를 방 3면에 설치하고 각종 서적과 유명 시집을 사 모아 1만여 권의 책을 채운 서재를 꾸몄지만 정작 창작의 산실 구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얼마 후 2007년 서울로 이사 중 장서가 문제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부산 정순영 시인이 재직하던 대학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였다. 막상 몇십 년 모은 월간지는 모두 제외되고 같은 시집도 여러 권이라도 한 권으로 계산하여 총 4,001권 기증하고 감사패 하나 받고 애지중지하던 책들과 안녕하며 내 문학의 산실은 문을 닫았다. 나 언제 그런 서적이 가득한 문학의 산실로 돌아갈 수 있으리.
[강정화]
경북 포항 출생. 1984년 『시문학』 등단.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한국여성문인회 이사·한국문인산악회 회장·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역임.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시집 『우물에 관한 명상』 외 13권, 시선집 『세상 속 작은 일』, 산문집 『새벽을 열면서』 외 1권, 논문집 『청마 유치환 시의 구조 연구』 외 다수. 시문학상·한국시문학상 본상·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