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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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냈지만 내 창작 공간에 대해선 늘 불안하다. 어떤 분들은 멋진 이름의 창작실을 소유하고 품위 있게 작품 활동을 하는데 나는 그런 공간이 없어서라기보다 게으르고 어수선하여 그러지 못하는 것 같다. 옛 선비들처럼 사실 그곳에만 들면 마음이 안정되고 머리가 맑아지고 손이 가벼워지면서 글이 슬슬 풀려나오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데 나는 멋진 서재와 집필실을 만들어 놓고도 내 식의 편한 방법만 택한다.
좁은 집에 살 때나 넓은 집에 살 때나 여전히 곳곳에서 책이 밟힌다. 그 사이를 피해 다니며 편한 자세로 베개 하나 가슴에 받치고 배 쭉 깔고 엎드려 펜을 잡거나 책상 놔두고 작은 밥상 하나 끌어다 놓고 그 위에서 글을 쓰기도 하는 나다. 그러고 보니 내게 창작 공간이란 장소적으론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소파에 누워 발을 하늘로 향한 채 펜을 들기도 하고 거실 바닥에서 소파에 발을 걸치고 누운 채 글을 쓰기도 하는 나를 누가 본다면 정서적으로 불안한 것 아니냐 할지도 모르겠다. 초고는 연필로 쓰기를 고집하면서도 어떤 땐 그것도 귀찮아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 메모장에 써서 이메일로 보낸 후 컴퓨터에서 출력하기도 한다.
작가라면 다 경험하겠지만 원고가 밀려 글을 써야 하는데 머리는 맑아지지 않고 스트레스로 눈알이 빠질 듯 아플 때도 있다. 그런 때면 나는 수면 안대를 하고 눈을 감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다고 잠이 들지는 않는다. 세상의 온갖 소리란 소리가 두 귀로 집중된다. 두세 개 원고가 마감 하루 이틀을 앞두고 있고 강의도 걸려있는 그런 때에 이런 모든 것을 다 말끔히 정리해 줄 수 있는 편안하고 정신도 맑아지는 그런 꿈의 창작 공간은 없을까.
내 서재나 집필실, 내 방과 거실은 늘 정신없다. 아내도 이젠 지쳤는지 모른 체 한다. 오늘 온 책은 봉투도 열지 못한 채 쌓여 있고 어제 온 뜯다 만 책들은 다른 쪽에 쌓여 있다. 정리를 한다고는 해도 연일 배달되어온 책들로 늘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다. 거실의 앉은뱅이 탁자 위에도 쓰던 원고며 보던 책이다. 누가 집에 올까 무섭다.
좁은 집에 살 때는 내 공간이 없다 투덜댔었다. 그런데 넓어져도 매양 한 가지다.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집필에 대한 스트레스일 게다. 월말이면 고정 연재가 있으니 최소한 3-4개의 원고가 날짜를 압박한다. 내 성격은 어떻게든 마감 날까지는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마감날 자정이 되기 전 11시 59분에 전송할 때도 있다. 마감날에 두세 개가 함께 목을 조일 때도 있다. 그러니 늘 안절부절못하고, 그렇게 마음이 쫓기니 좋은 글이 나올 수도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시간이 활용되는 때와 공간이 있다. 바로 이동 중인 전철 안이다. 해서 행선지가 멀면 더 좋다. 일단 자리만 확보되면 그곳은 내 집필 창작 공간이 된다. 집에서는 조용해도 온갖 세미한 소리까지 다 귀로 들어오는데 시끄러운 곳이라는 전제가 되어서인지 별로 신경도 거슬리지 않는다. 해서 전철을 탈 때는 최소 시간보단 최소 환승을 택한다.
내 가방 속엔 언제든 꺼내 계속할 수 있게 작업 중이던 자료가 다 들어있다. 앉는 즉시 꺼내서 버릇처럼 뒤적이며 눈으로 훑어가다 이것이다 싶으면 그걸로 시작한다. 잘 잡히지 않으면 가방에 도로 집어넣고 눈을 감는다. 그러다가도 생각나면 꺼내 다시 이어간다.
퇴고를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할 때도 있다. 가장 완벽한 나만의 공간이다. 소파에 누워 퇴고할 때도 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남의 것인 양 무심히 읽어보며 마무리한다. 그러고 보면 나의 창작 공간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내 생각이 살아나는 곳 내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다. 그래서 이동이 많은 요즘엔 지하철 안이 내 창작 공간이 될 때가 많다. 세상과 만나는 시간, 나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과 지극히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나의 눈에 들어오는 그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어떨 땐 내 사유와 만나고 그렇게 그들이 내 글쓰기도 돕는다. 그러고 보면 내 창작실은 내 서재도 집필실도 아닌 일상의 삶터와 이동 공간이 아닌가. 그러나 어찌 그거로 다 할 수 있겠는가. 내 집필실 정신없이 흩어져 있는 책들 속 컴퓨터에서 글쓰기 작업이 이뤄지고 프린터에서 작업 결과가 찍혀 나온다. 2미터도 안 되는 거리의 바로 옆방이 내 서고다. 자료를 찾으러 갔다가 겨우 몸 하나 빠져나갈 책들의 틈새에 주저앉아 책 냄새를 맡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어디서건 내 생각이 살아날 수 있는 곳이면 내겐 다 창작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