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당선작 2024년 12월 17호
1973년 주부 에세이에서 출발한 동서 문학상은 이제 엄청난 여성 문학인들을 길러내는 성과를 얻으면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제17회 삶의 향기 동서 문학상은 총 응모 편수 18,629편이었고 수필은 3,401편으로 3단계의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쳤습니다. AI의 힘을 빌린 듯 알맹이 없이 유려한 문장의 글도 있었습니다. 유학을 갔음에도 정규직보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글, 아이를 가지기 위해 애를 쓰는 젊은 여성의 글은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필 작품은 언제나 잔잔한 감동과 서사성을 갖고 평면 구조로 써야 한다는 논리는 아직도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더 깊이 자기 삶을 들여다보면서 성찰하고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기꾼의 능력을 갖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제 웬만한 글은 빅데이터를 장착한 AI 프로그램이 1분 안에 써주고 글 내용을 알려주고 그림을 요구하면 멋진 그림도 그리고 작곡도 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수필의 특성상 극적 구조나 픽션 등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제 내면적 흐름이나 매끈한 문장으로 물 흐르듯 전개를 해나가는 글보다 경험에서 우러난 스토리를 갖고 구조를 짜서 출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필이 반드시 은퇴자의 문학은 아니며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늘어진 시간의 얼굴도 아닙니다.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한 투쟁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젊을수록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찾아가는 경향이 강하다고 봅니다. 반전이 들어있는 스토리텔링적 수필이 빛을 발할 순간입니다.
은상 「돌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은 가족을 위해 탄광에서 일했던 광부 아버지를 그리는 글입니다. 어느 날 갱도를 타고 들어간 석탄 박물관에서 돌을 보다가 ‘아버지의 지문이 새겨진 돌의 소리를 듣는다.’ 그런 문구를 쓰기까지 사고로 희생한 아버지의 죽음을 더듬어 나갑니다. 격하지 않은 감정 표출과 돌을 상징으로 잡은 솜씨에서 프로의 역량을 엿봤습니다.
또 다른 은상 「마음 속 껍데기」는 출퇴근과 주말이 따로 없는 프리랜서의 하루를 그리고 있습니다. 남편과 사는 9평 투룸 공간의 식탁이 일터인데, 그 상황을 언제나 껍데기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소라게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현재에 이른 화자의 생활은 새로운 껍데기를 찾아 늘 불안합니다. 내면이 단단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소라게에서 깨닫고 있습니다. 소라게는 곧 자신입니다.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변화와 탈피를 꿈꾸는 상징을 잡은 작품입니다.
여기서 소개하지 못한 동상 세 분과 가작 다섯 분, 입선 열 분의 작가에게도 축하를 드리며, 삶의 향기 동서 문학상 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