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6년 3월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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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 남짓한 구두수선집은 도시의 틈새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철제 판넬로 된 외벽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으며, 휘어진 간판에는 ‘구두수선, 광택, 굽갈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문을 열면 가죽과 본드 냄새가 먼저 손님을 반긴다.
노인은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코밑까지 내려쓴 안경 너머로 무릎 위에 고무판을 올려놓고, 망가진 신발을 요리조리 매만진다. 무심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여름 햇살이 들이비춰 좁은 공간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벽면에는 손때 묻은 가죽 조각들과 수선용 징걸이, 장도리, 무딘 송곳, 가위, 굵은 실, 재봉틀, 본드 등 도구들이 정리된 듯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그곳이 십 리라도 되는 양, 자꾸 미루다가 오늘은 맘먹고 터벅터벅 신발 소리를 내며 향한다. 어쩌다 수선집을 바라보면 백발 머리에 구부정한 노인이 보잘것없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드센 고무를 자르는 손 주름은, 장인에게서 느껴지는 강인함으로 다가온다. 또렷한 말소리는 좁은 공간을 타고 뛰어오른다.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세상과의 다리를 놓아 주고 있다. 여기가 생의 한가운데임을 말해 준다.
탕탕탕 삭삭 삭삭 탕탕. 구두 손질을 멈추지 않고 노인은 눈짓으로 나에게 둥그런 앉은뱅이 의자에 앉기를 권한다. 나는 바닥이 덜컹거린 소리 나는 신발을 벗어 놓고 슬리퍼로 갈아 신으며 말했다.
“접착제로 붙였는데 걸핏하면 틈이 벌어져요.”
공구 더미를 뒤적이는 굵어진 손은 오랜 시간 해풍에도 단단하게 서 있는 고목을 닮았다. 노인은 신발 바닥을 뒤집어서 쓰다듬으며 이물질을 털어 놓는다. 너덜거리는 곳을 떼어 내고 본드로 바른 후 잠시 지긋이 눌러 둔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징걸이에 신발을 엎어 놓는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자근자근 능숙하게 두드린다. 숙련된 그 모습이 미심쩍어 쳐다보던 나를 움츠리게 한다. 바늘로 꿰매어서 헌 신발에 새살을 돋게 한다. 냄새나고 습기 찬 신발을 불평 한마디 없이, 여기저기 만지고 두드리는 겸손에 마음이 수그러진다. 한 귀퉁이에 있는 오래된 선풍기는 탈탈거리며 한 방향으로 종일 돌고 있다.
나는 노인의 손놀림이 고마워 성한 신발 한 짝도 마저 건넸다.
“아직은 괜찮지만, 한 번 더 꿰매주세요.”
“참 현명하시네. 뭐든 손보면서 사는 게 좋제.”
“어르신, 오랫동안 이 일을 하셨나 봐요?”
나는 신발 수선에 진심인 노인의 삶이 궁금했다. 여기 있는 모든 공구들이 40년 동안 당신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배운 것도, 밑천도 없다 보니 구두통 하나 어깨에 메고 수선공으로 살았단다. 신발도 사람처럼 산다고 한다. 닳아 버린 가죽 찢긴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삶의 굴곡을 알 수 있단다. 오체투지 하듯 땅을 걸어온 신발이 있다. 페인트 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굽은 무너지고 앞코도 뭉개지고, 가죽은 제 몸을 던지며 살아온 흔적. 양탄자 한 번 밟아 본 적 없는 흙투성이 신발은 주어진 길을 불평 없이 걸어온 증거란다. 대부분 수선집에 온 신발의 주인은 가난한 노동자라고 한다. 구두를 고친다는 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걷게 만드는 노력이 담겨 있다. 굽 하나를 다시 붙이고, 실을 꿰어 벌어진 틈을 묶다 보면 사람의 마음을 꿰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찢긴 마음은 바느질로 꿰맬 수 없지만 고쳐진 구두 한 켤레는 분명히 그 사람을 다시 길 위에 서게 만든다. 그래서 노인은 찢기고 뜯긴 마음도 꿰매고 기워 주는 마음 치료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이 내 목숨인 겨.”
노인은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일감이 있어 좋고, 고단한 삶이지만 보람도 있다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어떤 신발은 구두코가 통째로 벌어져 너덜거리기도 한다. 신발은 자신의 욕망에 닿지 못해 허덕이는 사람과 흡사해 보인다. 사람을 허기지게 하는 것이 배고픔이 아니라 채우지 못한 갈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인은 말없이 손을 움직인다. 벌어진 틈에 접착제를 바르고 이상과 현실을 이어 붙이듯이 무너진 모양새를 다시 세운다.
사람들은 가끔 만신창이가 된 신발을 구둣방에 두고 간다. 신발과 함께 주저앉은 삶의 골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인은 자신의 언어인 장도리로 못을 박기도 한다. 말 못 할 고단함을 발끝에 묻히고 사는 낡은 구두를 쓰다듬듯 들여다본다. 제 기능을 다 한 것들의 끈도 당겨 보고 해진 가죽도 닦아 본다. 노인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족집게처럼 꿰뚫어 보듯 짚어낸다. 신발 주인이 불편했을 부분을 눈썰미로 알아챈 후, 그곳을 자르고 붙이고 문지른다. 꿰매며 상처 난 곳을 보듬어서 흠결 없이 만들어 낸다. 망가진 신발을 고쳤으니, 이제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없이 마음을 전한다.
사람들은 수선된 제 신발을 찾아 신고 어디론지 길을 떠난다. 망가진 신발에 숨을 불어 넣어 준 노인의 노고가 걸어가는 손님들에게 위안이 되는 순간이다.
단단하게 붙이고 깔끔하게 박음질한 신발에 나를 집어넣는다. 그 헐거움 속에 묻힌 세월이 따뜻하다. 반들거리는 새 구두의 단단함보다 익숙한 편안함이 나를 더 닮아 있다. 수선한 신발을 신고 다시 길을 나선다. 노인은 내 안의 흔들림까지 수선했는지 신발은 조용히 중심을 잡아 준다.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는 나를 노인은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 시선에 말 없는 위로가 깃들어 있다.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라는 노인의 말씀 같은 신발이 오늘따라 유난히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