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6년 3월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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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같던 공문서의 문장들
이제는 먼지 묻은 서랍 속에
조용히 눕혀 두었다
하루의 시작은
벨소리가 아니라
새의 울음
빛보다 먼저 열린 아침
명령과 보고서의 문장들은
풀잎 끝에서 이슬로 맺히고
손끝의 미세한 떨림은
삶이 다시 호흡한다는 신호
긴 굴레의 시간 속에서
나의 언어는 늘
타인의 목소리였다
이제는 이름 대신
바람이 나를 부른다
텃밭의 흙냄새
작은 손끝으로
새 생명을 덮는 일
그 안에서 나는
자연의 숨결을 배운다
누군가는 퇴장이라 부르겠지만
이 길이 나에게는
다시 태어남이라는 것을
애벌레의 고독이 지나간 자리마다
나비의 그림자가 비친다
지난 생의 껍질을 벗으며
내 안의 시간은
천천히 날개를 편다
이제 스스로에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저 한 줄기 바람이 되어
꽃의 어깨에 잠시 앉고
한 줌의 흙이 되어
한 줄기 햇살을 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