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7
136
0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민주주의의 본질은
국가권력과 국제관계를
국민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있다.
한국 시민사회가 촛불, 빛 혁명에서 보여준
민주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가 제자리걸음인 것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두 개의
쇠말뚝인 한미동맹과 국보법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동맹이 주권보다 상위에 있고
주한미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한국 전쟁 연루 위험성이 높아지고,
미국의 관세폭탄을 앞세운
대미 투자 강요로
국부유출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익 추구가
가속화되면서 한국국익이 자꾸 오그라드는 형국,
동맹의 이름으로 종속이 심화되고 있다.
국보법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으로
분단과 통일문제에
국민의 접근, 행동, 상상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생각해도 상상해도, 접촉해도, 동질감을 느껴도
이적, 종북행위로 지탄받고 처벌하는 악법은
막걸리 국보법이라 불리듯
5천만 국민이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
국보법은
한미동맹에 대해 의심, 비판, 대안제시도
이적, 종북행위로 처벌하면서 미국익 증진에 기여해왔다.
미국은 유엔도 지탄하는
국보법 위반자의 미국행 비자발급을 제한하는 식으로
한미동맹의 보호 장비로 악용해 왔다.
촛불, 빛의 혁명이 민주주의 후퇴를 막았으나
여의도 국회와 청와대는
시민사회의 혁명적 변혁 요구를 외면, 무시한 채
국보법, 한미동맹이라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두개의 쇠말뚝에 대해서는
침묵의 카르텔을 완강히 유지하고 있다.
거대 여야당과 군소 정당 모두
정치개혁의 핵심요인인 두 거대 담론에 침묵한 채
내로남불, 아빠찬스, 엄마찬스, 내 찬스에 함몰되어 날밤을 샌다.
그들은 70 여년 된
분단기득권세력의 행렬에 동참해
일그러진 민주주의를 방치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실천을 기피하는
헌법적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은
동전의 앞뒷면 같아 세계가 조롱하는
한미동맹의 모순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의 동인이 되고
한국 국민을 개돼지로 방치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 결과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라는
헬조선 현실의 주동인의 일부가 되고 있다.
한미동맹이
미국익 증대 위주로 개악되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지만
한국 정치권, 언론 등 지배세력은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서
빛의 혁명으로
회복된 민주주의 영역이 다시 좁혀지고 일그러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 안보 분야도 정상화 되어야 한다.
동맹이
주권과 민주주의보다 우선할 수 없다.
촛불, 빛의 혁명 세력들이
세계최첨단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주었지만
국가의 자주적 결정권이
훼손된다는 인식과 행동이 실종상태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국제관행에서 벗어난
한미관계, 한미동맹에서 확인된다.
1945년 해방의
감격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 땅에 점령군으로 진군한 미군은
군정을 통해
민족을 배반, 탄압했던 친일과 부일 무리들을
권력기구에 등용했다.
청산되었어야 할
역사의 범죄자들이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것이다.
동족상잔의 6·25 포성 속에서
미군의 참전으로 기득권을 보장받은 친일 잔재들에게,
미국을 향한 고마움은
세포와 영혼 속에 각인된 DNA가 되었다.
그들에게 미국은 혈맹이자 은인, 시혜의 대명사다.
호칭 또한 '피로 맺어진 동맹', '
70여 년의 혈맹', '전략적 동맹',
'같이 갑시다'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이들은
이념이 민족에 우선한다며
반공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다.
자주를 외치는 목소리를 억압하고,
통일을 바라는 뜨거운 가슴들을 '친북'과 '이적'으로 몰아세우며
분단의 장벽을 자신들의 성채로 쌓아 올린 것이다.
'미국은
무조건 선하고 고마운 나라'라는 맹목적 패러다임,
그 거짓 신화는 지난 70년 동안 이 땅을 지배해 왔다.
남한의 지배층이
미국에 몰빵 하며 유포한
친미이데올로기, 미맹이 교과서에 실리고
언론이 보도하고, 공무원 시험이 강조하는 동안
미국은
한반도에서 미본토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 소련과 러시아를 정찰, 감시, 유사시 타격 대비하는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주한미군을
동북아 최전선부대로 만들어
국익을 최대한 챙기며
한국을 거기에 동조하도록 순치시켰다.
주한미군=대북 방어용이라는 선전구호 속에 감추어진
미국의 냉혹한 전략적 포석,
중국과 러시아의 턱밑을 노리는 정찰과 감시의 눈동자,
한국은 한 번도 스스로의 주인인 적 없이
미 본토를 수호하기 위한 육상 항공모함기지와
중국을 겨눈 비수로 소모되어 왔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이후
소련,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6,25 전쟁을 경험하면서
이들 사회주의 국가를 저지, 제압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미일안보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한미일 3각 안보체제를 만들었다.
주한미군은 유엔사와 함께
3각 안보체제의 핵심 축의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최고의 존재이유인
중국, 소련과 러시아를 최근접 거리에서
정찰, 감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한반도 영구 주둔이 필수조건이라고 보고 있으며
미국의
지난 70 여년간의 한반도 전략은
남북한을 관리해
적절한 긴장상태 속에서 분단을 유지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그런 상황에 발맞춰
한국은
미국익을 위한 51번째 주와 같은 역할로
미국에 절대 봉사했다.
한국은
동맹의 이름으로
군사적 주권을 내준 상태에서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올인하며
미국익을 위해
주한미군의 ‘비밀작전’에 대해 70 여년간 침묵하면서
자국민의 헌법적 권익을 짓밟는
직무유기를 저질렀다.
한국은
주한미군이 점령군과 같은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며
발생한 법치의 마비,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정치권, 언론 등 전체 지배집단이 침묵하면서
국민의 헌법적 권익이
훼손되는 것을 세계인의 주시 속에 방치하며
한미가
마치 대등한 국가관계인 양 거짓, 가짜뉴스만을 내놓고 있다.
촛불, 빛의 혁명이후 집권한
문재인, 이재명 정권도
주한미군의 진실에 대해 침묵하면서
한국국익을 외면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등을 돌리는 것은
과거 군사정부와 다를 바 없다.
미국은
한국의 진보정권이 남북교류협력을 추구할 때마다
한미동맹을 앞세워
미제 무기 다량 구입,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미일 3각 안보체제 강화 등을 통해
자국 이익을 챙겼고
‘북한 퍼주기’ ‘종북반미’ 등의 논리가 덧붙여진
미맹과 태극기 부대가 앞장선
남북대치갈등 심화 작업으로 그 위치가 더 공고해졌다.
노무현이
남북의 길을 열고자 했을 때,
문재인이
평화의 신화를 꿈꾸며 손을 잡았을 때,
이재명이
자주의 기치를 든 오늘에도
미맹으로 이익을 보아 거기에 취해지내는
정치권, 언론과 학계, 보수와 진보 위선자들은
분단기득권의 침상에서 안주하며
친북, 종북을 외치며
미국이 국익을 위해 주장하는
작권 전환 연기, 전략적 유연성 강화 등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이 선언한 2국가론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과
주한미군의 분단 지속 역할에 순응하며
자주성을 내팽개친
한국 기득권 세력도 그 방조자라 할 것이다.
전작권 전환이
하늘의 별따기 처럼 힘든 것인가.
미국은
전현직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20 년전 합의한 전환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는 갖가지 궤변을 늘어놓는데
그것이 다 미국익을 위한 작업이다.
그러나 한국 쪽은 조용하다.
정부 전현직 관련부처 관료나 전문가가 득시글거리는데도
전환의 필요성, 합법성 등에 대해
입을 여는 자는 가뭄에 콩 나듯 할 뿐이다.
눈치가 백단이라서 그러는가.
전작권은
헌법이 국가 수반에게 명한 군 통수권으로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그러나
미국과 미맹을 앞세운 친미몰빵 세력들은
'북핵'의 공포를 내세우고 '인계철선'의 궤변을 읊조리며
자국 군대를
타국에 위임한 부끄러운 현실을 정당화한다.
바보라서 그런가, 미맹에 눈이 멀었나.
그 자들은 병역의무를 진 자식이나 일가친척도 없나?
하여튼 기이한 일이다.
더 기막힌 것은
전작권 전환이후에도 군자주가
100%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한미동맹을 구실로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특권은 계속 누리며
점령군 비슷한 위세를 과시하고
미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한미연합군 체제에서
탈피나 철수할 수 있게 된다.
한국만
미국에 대해 혈맹, 은인이라고 칭송할 뿐
미국은 지난 70 여년 동안
미국익을 항상 앞세우는
차가운 이성적 한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진실을
미맹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철저히 외면한다.
미맹속에 안주하는 것이
본인과 가문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라는
허위의식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유엔사도
백악관의 지휘에 따라 정전협정 관리와 함께
한반도 전쟁 발생에 대비해
일본에 있는
유엔사 7개 후방기지를 지휘하면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이후에도
한국에서
미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군사적 특권을
주한미군과 유엔사가 계속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대행하는데도
한국 정부와 언론, 학계는 다들 침묵한다.
시민사회의 미맹을
심화시키는 작태라는 비판을 자초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작권 전환으로 자주가 이뤄진다고 말할 뿐
관련 장차관 들도
미국의
한국에 대한 군사적 통제, 지배에 대해 함구한다.
한국 정부, 지배계층의
미국 몰빵과 동맹 칭송, 찬양의 합창은
한미동맹이
대등한 국가 관계인양
국민을 기만하는 가짜뉴스로 작동한다.
이 또한
자의반 타의반으로 체질화된
미맹이
토해내는 기현상인가.
미국도
탄복할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대미굴종과 그 찬양은
정치 이데올로기를 넘어
사이비종교집단의 광기 수준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해방이후의 근현대사에서 첫 단추가 발견된다.
미국을 절대시하며
대미종속, 노예상태를 기뻐하고 찬양하는
종속, 굴종의 뿌리는
미군정과 6.25 전쟁,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특권을 인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에서 발견된다.
미군사력의
한국 배치가 미국의 권리가 된 뒤
지난 70 여 년 동안 미군의 점령군 비슷한 행태는
정상적인 동맹의 모습이 되었다.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동맹에 맹종하는
검은 머리 미국인만이 한국 지배세력으로 선택받고
힘이 정의라는 규범이 일반화되면서
미국만이 혈맹이고 은인이라며
동맹을 강화하자는
미맹을 진리로 찬양하는
목소리만이 여의도 광장에 울려 퍼지고 있다.
반미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
출마 자격 심사에서 탈락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형국이니
미국의 한국에 대한
동맹 관련 요구 청구서 항목은 해마다 늘어나고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 정부와 맞장 뜨는 일이 자연스럽게 반복되고 있다.
“전작권 전환 지연이나 중단도 필요하다.”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요구를 해도
더 보복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벌벌 떨 떠는 ‘과천에서부터 기는’
그런 존재로 비춰져서 인가?
그들의 모가지는
이재명 정부 들어서 더 빳빳해지고
깔보는 빛이 더 강해지는 형국이다.
촛불, 빛의 혁명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능멸, 모멸로 비춰지는
국제 조폭이나 불량배같은 언행도 삼가치 않는다.
트럼프가 미 법원이
불법으로 판정한 관세폭탄을 휘두르며
대미투자를 강요해도
한국 정부는
동맹의 이름으로 당연하다는 태도만을 취할 뿐이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 주한미군 방위비도 더 내겠다고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들이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생략한 채
공개적으로 말한다.
지구촌이
한미동맹을 어떻게 손가락질하고 폄훼하는지
한국 대통령이나 여의도 인사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힘에 대한 굴종이 국제사회 규범이고
민주주의도
그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21세기 지혜를 앞장서 실천하려고 그런 것인가,
볼수록 가슴 답답하고 메스껍다.
이런 한국에
미국은 한술, 두술 더 뜨는 식으로 기고만장, 안하무인 식으로 외친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앞세워 주
한미군을 대만해협과 중동 등 제 3국으로 보내
전쟁을 하겠다.”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관세 300%를 때리겠다.”
이런 부당하고 황당한 날강도 뺨치는 큰소리는
한국에
전쟁의 불길이 튀는 것과
국내 경제가 망가지는 것을 감수하란
공갈 압박 아닌가.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일은
한국 정부와
언론, 학계, 입심 세다는 유튜버 등은
미국에 대해
찍 소리 안, 못하고 조용~하다는 현실이다.
자의반 타의반 미맹으로 통일된
한국 지배층의
의식구조가 마비되어
생사 문제조차 분간을 못해서 그런 것인가.
여의도의
거대 여야당과 그 지원세력들의
나라가 온통 싸움으로
날밤을 지새우는 모습과 너무 대비된다.
그들은 국내 정치적 밥그릇을 놓고
칼과 총만 들지 않은
진검승부를 매일 벌이고
툭하면
소송으로 가거나
현미경, 허브 망원경으로
정적을 감찰하고
시시콜콜
유튜브에 쇼츠 올리며
쌈박질을 하면서도
정작 트럼프같은 국제깡패한테
맞장 뜨는 간큰 자는 한 노 ~ㅁ도 보이지 않는다.
온통 우물에 갇힌
개구리 새끼들의 난장판 싸움질만 난무할 뿐이다.
한국의
머리 잘 굴리거나 돈 잘 버는 자들이
발밑의 이익을 놓고
죽기살기로 싸우면서
정작 국가와 민족의 명운이 걸린 동맹 문제에
오불관언, I don't care하는 꼴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죽음을 초월한 경지에 다다라서 그런 것인가.
머리가 돌아버린 것인가.
혹시 바보라서?
그런데 TV에서는 한국이 경제, 군사 선진국이고
K-팝, 한류가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인가.
지배층의
대미 굴종, 찬양 태도와
젊은 세대의
선구적 당당한 기개, 개척자 정신은
너무 질과 양이 다르다.
촛불, 빛의 혁명으로
두 명의 대통령을 탄핵시킨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은 세계 최첨단, 최고수준인데
소수 지배층의
병든 정신 상태는 너무 저질이고 악취가 심해 걱정이다.
한국 정부,
언론은 2026년 중동 전쟁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가져올 위험이 확인되는데 함구하는
기이한 모습을 반복한다.
미맹이 위기의식, 감각까지 마비시켰나.
이란 전쟁에서
미군기지가 있는 사우디, 쿠웨이트가
이란의
마시일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이 매일 언론에 보도되지만
한국에서는
먼 나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초연하다.
심각한 정언유착인가.
이란 전쟁에서처럼
주한미군이 공격한 국가가
평택, 오산, 군산에 있는 미군기지를 공격할 경우
그 기지 주변도 안전할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원치 않은 전쟁이었다 해도
동맹관계이니
주한미군과 함께 전쟁을 해서
한국 군 장병들이 죽고 다치게 만들 것인가.
주한미군기지 주변에서 죽고 다치는
한국인 민간인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란전쟁을 살피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가져올
미래의 비극이 확인되지만
한국의 조야는
그저 생사를 초탈한 돌부처처럼 조용하다.
정치, 언론계 등의 종사자들은
자기 자신, 부모형제, 처자식 죽고 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돌부처처럼 침묵하는 것인가.
이재명 정부가
빛의 혁명을 국정에 반영한다는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헌법적 책무를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외면하고 직무유기 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탄핵 비슷한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까.
그런 것을 피하고 싶다면
이란이
사우디, 쿠웨이트 미군기지와 그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참혹한 전쟁이
한국 땅 미군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헌법 규정에 따라 대비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여의도와 청와대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정쟁, 정치적 난투극은
뒤로 미루고
주한미군 기지가 타국의 전쟁을 위한 출격지가 될 때
한국이
미국 적대국의 보복 공격을 받는
재앙이 닥치기기 전에
국민에게 사실을 알리고 공론을 통해
촛불, 빛의 혁명 주체들이 지닌
집단지성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인질삼아
주한미군의 주둔비를 터무니없이 요구하더니
트럼프의 국제깡패, 약탈자 같은 겁박을 앞세워
경제적 수탈까지 자행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과 안보를 빌미로
한국과 비대칭적 관계를 수십년간 지속해 오다가
한국이
경제 강국이 되자 국제사회의 환시리에
관세폭탄으로 겁박하면서
대미투자라는 명목으로 그 국부까지
강제로 빼앗는 식의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존재했을
국제 약탈자 짓을 동맹의 이름으로 강요하다가
미국 법원에 의해 위법 판정이 났는데도
한국 정부 꼬라지 보소.
트럼프에
천문학적 액수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신라금관까지 선물로 얹혀주면서
한미동맹 강화를 연발할 뿐이다.
미국이
동맹 여부를 가리지 않고 자행한
21세기 국제 강탈극을 자국 우선주의라고 포장하자
캐나다, 브라질 등은 반발하는데도
한국은
과공은 비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손하게
미제국의 압박을 수용해
지구촌이 혀를 내두르는 가운데
수백조 거대 국내자본이
대미 투자라는 이름으로 유출되게 만들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증액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도 다 내드리겠다고 말씀드린다.
미국 퍼주기가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넘기고 국내 경제가 피폐해질까 두렵지만
거대 야당도 미국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문다.
한국의 공장이
미국에 만들어지면 국내 공장 문 닫을 위험 높아지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며,
민생의 삶터가 파괴될지 모를 무서운 미래가 염려되지만
지배세력은 "동맹을 위한 당연한 희생"이라며
미맹의 찬가를 부른다.
한국 지배세력은
미국의 주문서만 받아들면
겁을 내면서 작아지는 모습을 연출하고
언론도 강육강식은 당연하다는 기사로 도배를 한다.
국민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는다.
한미동맹 속에서
국민은 개돼지 신세로 취급받는 것이
고정관념화 되어 있어
한국정부는
언제나 대통령과 장관 몇 명이 머리를 싸매고
미국과
비밀협상에 몰두하는 모습만 부각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축, 실종된 밀실정치가 당연시 되는
미맹만이 천지에 가득하다.
한국 정치권은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리면
엄청난 보복이 올 터인데 그래도 선방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언론도 거기에 박수를 친다.
한미동맹을 위해, 한국군 자주를 환수한다는 명목의
대미 퍼주기 투자가
이 땅의 경제를 고사시키는
거대한 수탈의 블랙홀이 되었을 때
이재명 정부는 그 책임을 어찌하려는지 불안하고 궁금하다.
한국 정부의 미국에 대한 굴욕적 태도는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이
미국의 무법자 강탈 요구에 강하게 맞서며
국제규범과 원칙을 주장하는 것과 너무 차이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는 만기친람식의 태도로 밤잠 설치며
비판, 대안제시를 하지만
불평등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이란 전쟁에 파병을 요구하자
해군함정을 중동으로 보내 성의를 다 하는 모습을
지구촌을 무대로 과시하고 있다.
한류, k-팝으로 세계 최정상의 위치를 점한
한국청소년들이
국제사회의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는
한미관계를 보면서
저런 비대칭관계가 정의고 진리인 모양이라고 오해할까 두렵다.
한국에서
촛불, 빛의 혁명과
정치권의 직무유기식 구태의연한 정치가 반복되면서
위로부터의 개혁은
또 빗나갔구나 하는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그런 기대를 갖는 것이
헛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포기해야 하는 절망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맹에 빠졌거나 미맹 속에 몸을 숨긴
정치권과 함께
분단에 기생하는 언론과 학계도
스스로
칠십 년 묵은 불평등 조약을 비판하거나
바로잡을 의지, 그런 동력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은
불평등한 한미동맹에서 떨어지는 떡고물로 만족하고
후손도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 최상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그런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작권이 외국군에게 있고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국이
동맹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자신과 그 후손도
안전하게 호의호식할 것으로 자신해서 그런 것인가.
그러나 한국사회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이승만 독재이후
한국 시민사회는 불의와 부정부패에
피 흘리며 항거해 엄청난 혁명적 성과를 거뒀다.
물론 그 성과는 기존의 지배세력이
다 빨아먹고 개선은 커녕 악화시키는 일을 반복해
촛불, 빛의 혁명이 뒤를 이어야 했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이제 종지부를 찍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2026년 가을
프랑스 등 유럽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는 약탈, 방화, 살인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면
2017, 2024~5년 한국 시민사회의
최첨단, 최선진적 시민의식과 개혁의지, 동원력이
얼마나 탁월한 것인지가 자명해진다.
한국 시민사회는 세계가 감탄할 집단지성을 실천해
두 차례의 혁명을 통해
두 대통령을 탄핵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이재명 정부를 조용히 주시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평온함 밑에는
엄청난 민주적 괴력을 지닌 시민의식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는 것을
분단기생세력과 미맹에 의탁하는 세력은 알아야 한다.
그 폭발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나
한미동맹과 국보법이라는 두 개의 쇠말뚝으로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생의 피폐,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미국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전략에 휘말려
한국이
전쟁의 먹구름 속에 휘말릴 위기가
턱밑까지 밀려올 때,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자존심이 짓밟히고
생존의 위협이 눈앞에 가시화될 때,
한국 시민사회의
뜨거운 분노와 개혁추구의 함성이
또 다른 집단지성을 창출할 것이다.
한국 정치와 제도가
국민을 개돼지로 보고
한국 민주주의를 불완전하게 억제하는
한미동맹, 국보법체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민사회가 확인했을 때
광장으로 나와 그 실천을 향해 행진할 것이다.
그 같은 거대한 폭발 속에서
한국에 미군배치 권리를 보장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등의 폐기를 요구하고,
조건 없는 전작권 환수를 정당한 주권의 이름으로 선언할 것이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유엔사의 미 대통령 지배체제를
정상적인 국가관계속에서
정상화하라는 함성이 진동할 것이다.
미맹에 갇힌 내로남불의 모순 속에서 흥청거리는
한국지배집단의 직무유기에 분노한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쇠말뚝을 뽑아내는 그날,
비로소 칠십 년을 이어온
종속의 한미동맹은 끝이 나고 이 땅에
진실한 자주와 평등의 새 아침이 밝아 올 것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