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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연재 23-한국 자주 쟁취와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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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작성일시2026.09.16

조회수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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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한국은 혼자다.

경제 중심부이고 문화 강국이면서

군사 종속국이자

분단국가이면서

미완의 민주주의 속에서

시민혁명이 4.19 이래 네 번이 났지만

여전히 정치 개혁,

군사자주가 이뤄지지 않는 나라

세계사 최초로

지구상에 유일해서

비교 불가능한 나라

그것이 한국이다.

혁명이 미완인 나라

광장이 여러 번 뜨거웠다.

네 번이나.

그러나 매번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혁명 주체들이 광장을 떠났고

기존 정치인들이 권력을 가져갔다.

기존 헌법 안에서.

기존 법제 안에서.

기존 구조 안에서

구태가 반복되었다.

왜 혁명 주체들이 사라지면서

분단과 반민주에

기생하는

기득권세력에 의한

부조리, 비합리가 청산되지 않는가.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광장의 시민이 권력이 되는 제도가.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를 파괴하고

새 제도를 만들었다.

이 나라의 혁명은

구체제의 인물들이

여야 간판을 바꿔가며 집권하고

구체제의 제도 안으로 돌아갔다.

그 차이가

네 번 혁명과

네 번 미완을 만들었다.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천장이었다.

재벌 구조가 천장이었다.

승자독식 대통령제,

여의도의 천박한

내로남불,

공천권이 흥정되는

정치문화를

숭배하는 국회가 천장이었다.

그 천장은 2026년에도 여전해서

빛의 혁명도

미완으로 가는 듯 해

또 다른 혁명이

예비 되고 있는 나라.

국가 발전에 대한 기존의

사회과학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나라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나라

내부의 모순이 극명해서

헬 조선이라 불리던 나라

지구에

이런 나라가 있었던가.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5위.

K컬처가 지구촌을 정복하고

반도체가 세계의 5차 산업을 견인하지만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출산율이

지구촌에서 가장 낮은

극과 극의 모순이 중첩된 나라.

동시에

군사적 자주권이 없어

전시에 60만 군대를 대통령이 지휘하지 못하고

미군 기지가 점령군처럼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면서

환경오염조차 책임지지 않는 나라.

미국에 대한 미맹(미맹)이 심각해

도감청 당한 어느 대통령은

“문제없다.”라며

통 큰 소리를 했고

다른 대통령은

트럼프의 3천5백억 달러 대미 투자 강요에

금관까지 선물로 받치면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는 나라.

이 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없다.

비교 불가능하다.

전례가 없다.

그것이 이 나라의 비극이면서

이 나라의 가능성이다.

한국은 종속이론이나

발전국가론만으로는

그 역설적 현실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문화적 중심부로 도약하면서도

안보적 자율성은 미비인

새로운 국가 유형에

걸맞은 복합적 발전 이론이 필요하다.

단일 대상·국가 중심의

기존 사회과학은 21세기 AI 시대에는

그 한계가 너무 분명해서

박물관에나 가야할 지경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 발전되는 과정이다.

AI가 인간 세상의

패턴과 상관관계를 설명하면서

예측한다면사회과학은 그것을 양분삼아

창조적으로 변형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가.어떤 세계를 원하는가.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그 질문들은AI가 대신할 수 없다.인간이 해야 한다.

사회과학이 해야 한다.

BTS가 그래미에 "아니오"라고 말한 것처럼

한국 사회과학도서구 이론에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때가 됐다.

그것이 지적 자주의 실천이다.

2026년 여름

이 나라의 역동성은 멈추지 않는다.

세 가지 힘이 자라고 있다.

첫 번째 힘.

기술.

삼성이 엔비디아를 먹여 살린다.

SK하이닉스가 없으면 AI가 없다.

한국 반도체 없이

미국의 기술 패권이 흔들린다.

그 힘이 협상력이 된다.

"우리 없이는 당신도 없다."

그 말을 할 수 있는 힘.

두 번째 힘.

문화.

BTS가 그래미에 등을 돌렸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 선언이 씨앗이다.

문화 자주권에서 시작된 혁명의 씨앗은

경제 자주권을 거쳐

군사·외교 자주권으로 자라는 자양분과 성장촉진제가 된다.

세 번째 힘.

시민.

8년 사이 두 번의 탄핵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

그 시민들이 살아있다.

그 시민들이 다음을 준비한다.

이 세 가지 힘이 수렴할 때.

현실 모순의 임계점이 온다.

다섯 번째 혁명이 온다.

한국적 현실 모순을 대표하는

자살과 출산

두 개의 숫자가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

이 두 숫자가 같은 말을 한다.

삶이 너무 가혹하다.

미래를 믿을 수 없다.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무겁다.

입시와 취업 지옥

집값 지옥과 노인 빈곤 지옥

사회 안전망 부재 등등등.

경제 선진국이 됐지만

삶의 질은 선진국과 거리가 멀다.

GDP가 올라갔다.

그러나 행복이 따라오지 않았다.

압축 성장이 공동체를 파괴했다.

전통적 유대가 사라졌다.

새로운 연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개인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경쟁에서 지면 낙오자가 되고

낙오자를 구하는 손은 아직 없다.

출산율이 말한다.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신뢰가 없다.

자살률이 말한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두 숫자가 고발한다.

화려한 외피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지를.

다섯 번째 혁명은

철저하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희망사항지만

가정법으로 말해보자.

인물만 바꾸지 않는다.

구조를 바꾼다.

새 헌법을 만들고

악법 국보법을 폐지한다.

평화통일을 말하는 것이

이적행위가 아닌 나라를 만든다.

동맹을 정상화해서

권리라는 점령군 단어를 삭제하고

무기한이 아닌 10년으로.

사전협의 없음이 아닌

대등한 수시 협의로.

전작권은 당연히 환수한다.

지금 당장.

조건 없이 헌법 74조대로.

재벌 구조를 개혁한다.

경제 민주주의를 만든다.

그것이 다섯 번째 혁명이다.

광장에서 시작해.

제도로 완성되는.

인물과 함께 구조를 바꾸는

혁명이 절실하다.

출산율이 오르는 날.

혁명이 완성되는 날이다.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신뢰.

이 사회에서 살아갈 만하다는 믿음.

경쟁에서 지더라도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안도.

노인이 되어도 존엄을 잃지 않는다는 확신.

그 신뢰가 생길 때.

출산율이 오른다.

자살률이 내려간다.

그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법과 구조에서 온다.

공동체에서 온다.

연대에서 온다.

경쟁만 있고 연대가 없는 사회.

승자만 있고 패자를 돌보지 않는 사회.

그 사회에서는 신뢰가 자라지 않는다.

다섯 번째 혁명이 그 구조를 바꿀 때.

출산율이 오른다.

자살률이 내려간다.

그것이 혁명의 완성이다.

미완의 완성은 찬란한 창조다.

이 나라가 비교 불가능한 것은

강점이다.

약점이 아니다.

전례가 없다는 것은.

전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새 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 혁명이 미완이었다는 것은.

다섯 번째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그 고통을 아는 사람들이

연대의 가치를

가장 절실하게 원한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는 것은.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라는 것이다.

미완의 나라.

그러나 완성을 향해 가는 나라.

아리랑이 살아있는 한.

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헌법 74조가 기다리는 한.

두 번의 탄핵을 이뤄낸 시민이 살아있는 한.

민주화와 동맹 완성의 날이 온다.

그날.

자살률이 내려가고.

출산율이 오르고.

자주권이 돌아오고.

국보법이 역사박물관으로 가고.

동맹이 정상화되고.

분단이 끝나는 날.

그날이.

진짜 대한민국의 탄생일이다.

이 나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시민 동원의 불꽃이

또다시 기존 정치에 흡수될 것인가,

아니면 제도의 뼈대를 바꿀 것인가.

인구의 절벽 앞에서

성장의 공식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인가.

안보의 그늘 속에서

자율성의 공간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

압축된 기적이

압축된 파국으로 끝나지 않도록

삶의 질과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는 틀이라면,

이제 한국은

새로운 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발전국가의 유산을 넘어,

압축 근대화의 상처를 치유하며,

분단과 동맹의 상처를 씻어낼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미래는 가정법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나라는

기적과 모순을 딛고

불꽃의 미래를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난 수십년간

달성된

성공의 높이만큼

고통의 깊이도 깊었다.

그러나 역사는 진행형이다.

시민의 함성이 반복해 일어났듯이,

그 함성이 제도를 바꾸는 날,

자살의 그림자가 걷히고

아이들이 다시 태어나는 날,

안보의 사슬이 자주로 바뀌는 날

그때 비로소

이 압축된 기적의 땅은

진정한 자주와 존엄의 나라로

세계 앞에 우뚝 서리라.

이쯤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과거를 돌아보자.

온고이지신이

필요하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은

과거를 단순히 버리거나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성과와 한계를 깊이 성찰해

미래를 설계할

새 틀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경제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었으나

안보의 핵심 결정은

동맹의 비대칭 속에서 흔들리고

국보법은 여전히

사상의 경계를 긋고

기본권을 진흙탕 속에 처박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술과 문화 뒤편에

젊은이들은 삶을 포기하고,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는

조용한 재앙이 진행 중이었다.

강한 국가와 활발한 시민사회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이 땅.

승자독식의 정치,

강자에 약한 정당,

높은 도덕적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대통령들을 차례로 집어삼켰다.

혁명은 반복되었으나

혁명 이후의 공백 또한 반복되었다.

광복이후 네 번의 혁명은

네 번의 미완으로 이어졌다.

1960년 4월.

학생들이 일어났다.

이승만이 떠났다.

광장이 뜨거웠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5.16이 왔다.

군화 소리가 광장을 밟았다.

4월 혁명 주체들이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1987년 6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최루탄 속에서 넥타이를 한 직장인들이 나왔다.

전두환이 물러났다.

직선제가 왔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노태우가 당선됐다.

군부의 후예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잡았다.

6월 항쟁의 혁명 주체들이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2016년 겨울

촛불이 타올랐다.

1700만 명이 광장에 나왔다.

박근혜가 탄핵됐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개혁이 미완으로 끝났다.

국보법이 살아있었고

한미동맹이 건재했다.

혁명 주체들이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2024년 겨울.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후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갔다.

계엄이 해제됐다.

탄핵이 이뤄졌다.

새 나라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뒤

구조가 그대로다.

국보법이 살아있고

SOFA가 건재하다.

전작권이 미군에 있다.

혁명 주체들이 또 사라졌다.

기존 법제로 돌아갔다.

네 번의 혁명.

네 번의 미완.

왜인가.

민주화 세력은 권력이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1948년

미군정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헌법체제 때문인가.

어쨌든 그 틀이 70년 동안

혁명의 천장이 됐다.

광장의 에너지가 아무리 뜨거워도

그 천장을 뚫지 못했다.

천장 아래에서 구체제의

기득권층 속 인물만 바뀌었다.

구조는 그대로였다.

이 나라 대통령들의 비극 또한

세계사적이다.

12명.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12명.

이승만.

하야 후 망명.

하와이에서 죽었다.

박정희.

재임 중 총에 맞았다.

측근의 총에.

최규하.

쿠데타에 밀려났다.

전두환.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면됐다.

불법 비자금으로 다시 구속됐다.

노태우.

구속됐다.

김영삼.

아들이 구속됐다.

김대중.

아들들이 구속됐다.

노무현.

검찰 수사를 받다

봉하마을 뒷산에서 몸을 던졌다.

이명박.

구속됐다.

박근혜.

탄핵된 뒤 구속됐다.

문재인.

퇴임 후 무능,

무기력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책방지기가 되어 지낸다.

윤석열.

재임 중 탄핵됐다.

구속됐다.

왜 대통령들은 저 모양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구조의 문제인가.

왜 한국의 혁명은 매번 미완으로 끝나는가.

'혁명 없는 혁명'의 반복은 패턴이 있다.

혁명의 에너지는 광장에서 나오지만

혁명 후 권력은 제도권에 속하는

기존 정치인이 가져간다.

혁명 주체가 권력을 잡지 않는다.

아니, 잡을 수 없는 구조다.

왜인가.

첫째, 광장의 권력이 제도권 권력이 되는

법과 제도가 없다.

1948년

헌법이 미군정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뒤

합법적 개헌은 있었지만

혁명적 개헌은 없었다.

혁명 이후에도

기존 헌법 틀 안에서 선거를 치렀다.

둘째, 국보법과 한미동맹이

혁명의 천장이다.

혁명이 일어나도 국보법이나

한미동맹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 천장 아래에서 혁명이 일어나니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셋째, 재벌 구조가 건재하다.

경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 구조가 바뀌어도 실질 권력은 그대로다.

한국의 모든 혁명은 재벌 구조를 건드리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과의 차이는?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의 법과 제도를 파괴하고

새 제도를 만들었다.

한국의 혁명은 구체제의 법과 제도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인물간의 교체였다.

혁명의 형식은 있었지만 혁명의 내용은 없었다.

이런 구조의 문제 속에서

비정상이 집적된 지배구조가

대통령들을 집어삼켰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13번째 대통령도

같은 길을 걸을까,

아니면 꽃길을 걸을까.

다음

한국을 분석하고 설명하고 예측했던

사회과학이론들의 궤적을 살펴보자.

종속이론은 말했다.

주변부는 영원히 주변부로 남을 것이라고.

그러나 한국은 그 예언을 깨뜨렸다.

발전국가의 힘으로,

압축적 근대화의 속도로

반주변부를 넘어 중심의 문턱에 섰다.

긴 냉전시대

양분된

이념세계의 힘겨루기 속에서

한국은

종속이론의 적용대상으로

인식됐다.

1991년.소련이 무너진 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했다.

“역사의 종언.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최종 승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순탄치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등으로자본주의 내부 모순이 폭발해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부가 동요하고

2020년대.중국이 G2가 됐다.

국가 주도 자본주의가자유시장을 넘보면서

후쿠야마의 선언이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아직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위기 속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트럼프가 나타나

냉전시대 이래의

진영논리를 국가이기주의로 대체하고

우크라. 이란 전쟁에서

핵을 가진 슈퍼파워와

그렇지 않은 국가간의

21세기 형

전쟁 양상이 전개되고

지구촌은 새로운 각자 도생의

각축장으로 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사회과학은 이제

국가만을 유일한 단위로 삼을 수 없고,

세계를 단일한 대상으로만 다룰 수도 없다.

AI가 활성화되어도

이론은 여전히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다층적 현실을 어떻게 품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남았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국가들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성공과

가장 극단적인 긴장을

동시에 끌어안은 존재다.

그 어떤 나라도 완전히 같지 않은

독자적인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 종속에서는 벗어났지만

군사·안보적 종속은 심화됐다.

전시작전권이 없다.

SOFA가 불평등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미국에게 권리를 준다.

경제는 중심부가 됐지만

군사·안보는 여전히 주변부 구조다.

이 2중 구조가 한국의 핵심 모순이다.

종속이론은

한국의 경제적 성취를 설명하지 못하나

군사·안보적 종속을 설명하는 데는 여전히 유효하다.

발전국가론은

한국의 과거를 설명하지만

미래를 안내하지 못한다.

전략적 자율성론이 가장 유망하지만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담지 못한다.

한국은 기존 어떤 이론으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분단국가라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

인도·브라질·터키의 전략적 자율성 이론은

분단이라는 변수를 포함하지 않는다.

한국은 최고 권력을 끌어내린

탄핵 두 번의 시민사회 역량이 있다.

이것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경험과 다르다.

한국처럼

문화 권력과 경제 권력이 동시에 성장한 경우가 없다.

K컬처의 세계적 영향력은 전례가 없다.

따라서 한국에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한국의 현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경로를 제시할 이론은

다음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

경제 중심부화 + 군사 주변부 탈피의

비동시성을 설명해야 한다.

분단이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도전 역량을

핵심 변수로 포함해야 한다.

문화 권력이 경제·군사 권력으로 전환되는

경로를 설명해야 한다.

가장 정확한 답은 이것이다.

한국은 기존 이론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야 하는

선례 없는 사례다.

BTS가 그래미를 거부한 것처럼

한국 학계도 서구 이론의 틀을 거부하고

한국의 경험에서 새 이론을 만들 때가 됐다.

그것 자체가 지적 자주권의 실천이다.

이 나라에는

흥미로운 가능성 앞에 있다.

새 이론은 새 현실에서 나온다.

한국은 지금 전례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경제 중심부에 가까우면서 군사 주변부.

민주주의이면서 분단 상태이고

K컬처 강국이면서 불평등 SOFA에 짖눌리고

AI 반도체 강국이면서 전작권 없음

등등등.

이 모순들이 기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설명 불가능성이 새 이론의 출발점이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기존 서구 문학 문법이 아닌 한국의 경험에서 나온 언어로.

사회과학도 그럴 수 있다.

기존 서구 이론의 번역이 아닌

한국의 경험에서 나오는 새 이론.

분단을 살아온 경험.

두 번 탄핵한 시민사회의 경험.

경제 주변부에서 중심부 쪽으로 이동한 경험.

문화 권력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경험.

이 경험들이 21세기 사회과학의 새 이론을 만들 재료다.

BTS가 문화적

자주의 거보를 내디딘 뒤에도

여의도를 무대로 한 정치구태가

반복되는 것은

새로운 변화로 가는

필연적 과정이며

희망의 불꽃이 커지는

불쏘시개가 된다는 것을

머잖아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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