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8
12
0
<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남한에 친미 세력이 있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불리는.
그들이 미국의 한반도 역사를 아는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아는가.
미군정이 친일파를 기용한 것을 아는가.
일제 731부대 면죄부를 아는가.
광주에서 전두환 학살을 허락한 것을 아는가.
모른다.
아니면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처세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광화문 시위에도 성조기를 흔드는
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국보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판하면 반미.
반미는 친북.
친북은 국보법 저촉.
상상하는 자유조차 억압하는 현장에서
자신들이 진실이라며
더 큰 진실에 눈과 귀를 막는다.
역사를 모르면
현재를 올바로 볼 수 없다.
현재를 올바로 보지 못하면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다.
한국의 20대와 30대가 있다.
K팝으로 세계를 흔들었다.
K드라마로 넷플릭스를 점령했다.
K방산으로 세계에 무기를 판다.
그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본다.
그들이 더 자유롭게 생각한다.
그들이 더 당당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묻는다.
한미관계 151년을 아는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배웠는가.
군산과 오산이 중국 미사일의
표적이라는 것을 아는가.
성주 사드가 대만 해협과
연결된다는 것을 아는가.
정치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다.
교과서, 참고서에도 없다.
문학작품, 미술, 음악에도 없다.
국내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움에도 없다.
국보법이 스크린하는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때문에
국보법에 저촉될 만한 것은
친미라는 틀이 가두어 분류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기성세대의 책무 아닌가.
지구촌에서 대미종속이라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나라를
젊은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 아닌가.
불평등 한미관계 정상화는 반미가 아니다.
정상화는 대등한 관계다.
대등한 관계는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
필리핀과 미국 군사관계는 대등하다.
필리핀이 자국법에 의해 쟁취했다.
나토 회원국도
미국과의 군사관계는 대등한 관계다.
일본도 한국보다는 낫다.
일본이 협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협상했는가.
1953년 전쟁 중에.
이승만이 미국에 모든 것을 줬다.
필리핀, 나토 회원국 경우를 참고만 했어도
주한미군에게 점령군같은 특권을 주는
폐해를 알았을 터인데.
이승만이 투쟁한 일본제국주의가 침략, 점령한
조선의 비극을 기억만 했다면
한미관계가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지구촌의 상식이 경악했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70 여 년 동안 유지됐다.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다.
개정 조항조차 없다.
수정하려면 6조를 발동해야 한다.
폐기를 통고하고
새로 협상해야 한다.
그것이 두려워서인가
한국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한국이 달라졌다.
세계 10위 경제.
세계 6위 군사력.
K컬처가 세계를 누빈다.
그 힘으로
151년의 관계사를 다시 설계할 때다.
태평양 너머 미국에게
한국이 당당하게 말할 때다.
"우리는 대등한 관계를 원한다."
그것이 한미관계 정상화이고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다.
역사를 아는 것이 자유의 시작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주권의 시작이다.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 여년은
단지 약육강식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주권의 공백기에 대한 반성문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상호 대등한 국격과 국제법을 전제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과의 이념의 벽을 허물며,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를 설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무책임한
방관자에서
미래의 주인으로 거듭나리라.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보고,
남북문제를 주체적으로 바라보며,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로
신냉전의 격랑을 헤쳐 나가자.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행복한 한반도를 물려줄 책임이 있고,
젊은이들은 그 땅 위에
자랑스러운 미래의 초석을 쌓을 권리가 있다.
이런 목표를 위해
이 땅의 고정관념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면서 진위를 가려보자.
미국의 원조 덕에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국가의 발전, 변화는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로
하나의 요인을 앞세우는 것은 바보나 할 짓이다.
미국의 덕이라는 신화를 벗겨보면 다른 진실이 보인다.
4.19 혁명, 부마 항쟁, 6월 항쟁, 광주의 함성은
시민들이
흘린 피로 일군 민주주의의 터전이었다.
미국이 적극 지원했던 친일 기득권층은
민주화로 확대된 공간의 과실을 즐겼을 뿐
그것의 양과 질을 개선하는 것은 외면했다.
경제 기적은 또 어떠한가?
박정희 시절부터 이어진
정경유착과 부패 속에서
노동자는 저임금에 신음하면서
노동쟁의는
친북행위로 처벌당했다.
거제도 조선소 노동자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일터에서 51일 동안 외친 끝에
세계 1위 수주량 뒤에 가려진
천민자본주의 정체를 폭로했다.
한국의 경제기적은
모택동이 문화혁명으로
시간을 허비한 공간의 덕을 보았다하는데
오늘날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된
것을 보면 헛소리는 아닌 듯하다.
한국과 중국이 1960 년대부터
경제발전을 놓고 경쟁한 상상을 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강의 기적은
세계 자본주의 원하청 시장 구조에서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의 착취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지
한미동맹만의 덕이라 것은 무식한 주장이다.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노동자들의
살인적 노동과 최저 임금 위에서 만들어졌고,
재벌의
독식과 정치권의 뇌물은
그 착취 구조 위에 꽃핀 악의 꽃이었다.
미국의
자본과 기술이 도움이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위대함은
국민의 피와 땀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성과라는 것을 잊지 말자.
한미동맹, 주한미군이
안보를 담당해준 덕이라 하는데
정전협정 당시 국군의 병력은
60만 명으로 완전무장상태여서
자주 국방이 가능했고
이승만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동맹을 합의해준 것은
한미일 3각 군사협력체제를 만들려는
미국에
야합한 측면이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10위의 경제력, 6위의 군사력이 무색하게
한미동맹 안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여전히 희미하다.
북한에 대한
선제핵타격이 논의될 때,
한반도가 쑥대밭이 될 가능성에 대해
한국 정부는
협의 대상이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미동맹, 미국 국내법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미국을 찬양하며 은인이라 경배하지만
북한을 오직 궤멸의 대상으로만 보며,
같은 조상을
둔 형제자매라는 점을 외면한다.
인간은 유전학적으로 볼 때 이념과 사상에 의해
그 DNA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는 천륜을 거스르는 것 아니가.
냉전종식과 함께 종말을 고한
동서이념 논쟁, 대결을 여전히 앞세우며
민족의 재통합을 통한 자주와 평화의
청사진을 외면하고 있다.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 하는 자들은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년 역사에 대해
무관심과 무지의 벽을 두껍게 쌓아놓고 있다.
국내 어느 역사 교과서에,
어느 사회과학 서적에
미국의 한반도 개입 전모가
객관적으로 기록되었는가?
친미는 찬양되고,
반미는 국보법에 처벌받는 풍토 속에
진실은
침묵의 그늘 속에 묻혀 있다.
인터넷 시대 해외 기밀 해제 문서에
객관적인 한미관계 자료가 넘쳐나건만
우리의 학계와 언론은 여전히
냉전에
함몰된 프레임에 갇혀
미국의 실체보다 허상에 집착한다.
미국 슈퍼갑과 한국 을이라는 관계가
지구촌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알려하지 않는 그 모습이 정말 참혹하다.
그러나 희망은 젊은 세대에게 있네.
K-컬처와 K-방산, 세계를 무대로 외치는
20-30대의 젊음에게 희망이 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꿈꾸지 못한 지평을 보고 있다.
그들은 열등감 없이 세계와 대면하며,
미국과 중국, 강대국 사이에서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나침반,
남북 분단의 비극을 해결하는 것이
민족의 숙원이며,
동북아 평화의 기본 전제임을
젊은이들이 직시하고 실천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
이를 위해 우리의 과거를 다시 살피자.
1881년, 조선의 땅에 첫발을 디딘 이후,
미국의 한반도 개입 150 여 년은
미국식 국가이기주의의 일방통행이었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암거래하고
조선인의 독립운동을 철저히 외면했다.
일본 항복이후 미국이 국가 이익을 위해
일본의 악마들과 밀거래한 행태를 보라.
만주 벌판에 세운 악마의 실험실,
조선인 애국자, 독립군 등의
살아있는 심장을 적출하고,
세균을 주입하며 만여 명을 학살한 731부대.
그 추악한 전쟁범죄의 기록을
미국은 비밀리에 손에 쥐었다.
그 대가는 무엇이었나?
천인공노할 전쟁범죄자들의 면죄부였고,
세균전 실험 데이터와 맞바꾼 인류의 양심이었다.
가스라-테프트 밀약보다
더 음흉한 이 거래는
오늘날 주한미군의 세균전 실험실로 연결되었다.
이 사실을 직시할 때,
한미일 동맹의 이면이 비로소 보이고,
미국은
결코 정의의 천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자국 이익 앞에 타국의 생명을
한낱 숫자로 여기는
냉혈한적인 계산법이
오늘날 한미동맹 도처에서
발견된다.
미군정 때부터 그랬다.
미국은 친미국가를 만들기 위해
해방정국의 자생적 정부는 불허하고,
독립운동가들은
개인 자격으로만 들어오게 했다.
3년의 미군정은 친미 정권의 인큐베이터였고,
애치슨 라인의 발표와 6.25 참전도
미국익을 우선시 하려고
소련의 견제와 극동 패권을
저울질하는 계산과정이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뒤 평화협정은 외면한 채
미군의 한국 주둔을 미국의 권리로 인정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앞세워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핵무기도 많게는 1천 발 남한에 들여오면서
북한은 핵무기가 전무한 상태였지만
대북용이라고 포장해 선전했다.
미국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쿠데타 정권도
미국의 전략에 부합하자 정통성을 부여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군사 주권은
미군 사령관의 손으로 더 깊이 넘어갔다.
혈맹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국은 미국의 51번째 주처럼 움직였다.
2026년 6월 현재 경북 상주에
배치된 미국 사드의 날카로운 안테나가
중국과 러시아 하늘을 핥아내고 있다.
군산과 오산의 활주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전략 폭격기가 활주로에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냉전시대 이래 24시간 반복한 일상의 업무다.
중국과 러시아도 대응 태세를 갖춰왔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강대국간의 무력충돌은 한국민이 전쟁에
휩쓸려 피해를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을 미국, 한국 정부는 한번도
언급치 않았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자국민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외면한
직무유기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아직은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수백 발의 미사일,
한반도 미군 기지를 향해 배치되어 있고
중국, 러시아 합동공군 훈련이
매년 강화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대치가 심화되지만
이 땅의 정치와 뉴스는 침묵한다.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한국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걱정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한국 국민의 헌법적 권익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인가?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북한의 미사일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말하고,
미국의 핵 선제타격은 사전 협의조차 없이 논의되네.
최소 천만의 사상자가 예고된 전쟁터에서
미국은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외치고,
한국 정부는 침묵의 벽을 쌓고 있다.
오늘날 동해와 서해의 새벽은 고요하지만
오래전부터
전쟁을 예비하고 있다.
군사지도 위에는
성주, 오산, 군산이 붉게 표시되어 있고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누군가는 말하고 있다.
평화를 위한 방패라고.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방패를 겨누는 창끝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사드가 배치되던 날,
대륙의 미사일은
성주를 겨냥하기 시작했고,
군산과 오산의 좌표는
거대한 전쟁의 표적이 되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사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강대국의 계산표 위에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냉전이후 오산, 군산 활주로에서는
전략폭격기가 밤낮 없이 대기하고,
대륙의 수백 기의 미사일이
호시탐탐 표적을 노려보고 있다.
그러나 신문은 침묵하고,
방송은 설명하지 않아
국민은 무엇이 자신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은 교체되면서
햇볕도 있었고, 강경대치도 있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언제나
침묵 속에 미 국익을 위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평화를 말하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에는
인류의 위협이라 외치면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검토하는 일에는
당사국인 한국과
사전 논의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평화와 동맹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쟁이 시작되면
수도권 천만의 삶이 무너지는 것보다
미 국익이 더 중시되는 현실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10년 미 의회 보고서는
군산과 오산은 중국에서 400km로
중국이 겨누고 있는 무기는
탄도미사일 480기와
크루즈 미사일 350기로
일본 가데나 기지를 겨냥한 것의 두 배다.
이런 사실을 군산, 오산 사람들이 알고 있는가.
미국이 군산에 중국 타격용
전략폭격기를 배치했을 때부터
중국이 수백 기의 미사일로 겨눴다.
그 사실이 한국에서
제대로 보도됐는가.
국보법과 한미동맹이라는 틀 때문인가.
그 틀이 오산, 군산 시민의 안위보다
더 중요해서 그런가.
군산과 오산 미군기지가
그곳 한국인보다 더 중요해서 그런가.
한미동맹이라는 국제법이 중요하다면
한국 헌법에 적힌
한국 정부의 국민에 대한 책무,
국민이 전쟁이 아닌
행복을 보장받을 권리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할수록 해괴한 일이다.
2017년 경북 성주에 사드의 경우를 보자.
AN/TPY-2 레이다는
탐지 거리 870km에서 3,000km로
북한 방어용이라고 했다.
그러자 중국이 말했다.
“그것은 중국을 탐지하는 장치로
중국 전역의 무장상태를 정찰, 감시하는 시스템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 조치를 취하고
성주가 미사일 표적이 됐다.
성주 주민들이 시위하면서 길을 막을 때
눈물을 흘렸다.
한국경찰이 주민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동원됐다.
한미동맹으로 발생한 남남갈등이었다.
미군은 뒷짐 지고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보도됐다.
그 미소에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가 담겨 있었다.
미국이 원하는 무기는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로
한국이 거부할 수 없다.
성주 주민들의 운명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연결된 사실을
성주 주민들은 알고 있는가.
한국 정부는 그것을 주민들에게 설명했는가.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26년 미국이 말한다.
한미동맹에 의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의해
대만에서 전쟁이 나면
주한미군이 투입된다.
한국의 동참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
성주가 위험해지고
군산과 오산도 마찬가지다.
그곳 한국 국민이 위험해진다.
한국이 결정한 것인가.
한국이 동의한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그렇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에 따른 것인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권리 때문에
대만 해협의 미중전쟁이
성주의 사드 기지 미사일 표적과 연결된다.
오산, 군산의 화염과 연결된다.
한반도 주민의 생사와 연결된다.
미국은 그 연결고리를
한국과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
통보해도 되지 않는다.
그것이 조약이 허용하는 것이다.
2023년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을 감청해.
비밀문서가 유출됐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세계가 알았다.
한국 대통령이 말했다.
“문제없다.”
2023년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돼 그곳 토양이
기준치 36배의 오염이 확인됐다.
미국이 정화했는가.
아니다.
한국이 흙을 15cm 덮고
용산어린이 정원을 만들어
어린이와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 오염 투성이 땅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한국의 국력은 세계 10위가 됐다.
그러나 한미관계의 구조,
한국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가쓰라와 태프트의 밀약은
한 시대의 거래였고,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료는
또 하나의 침묵이었다.
죽은 자들의 비명보다
강대국의 전략이
더 중요했던 시대.
정의보다
정보가 값비쌌던 역사.
인간보다
국익이 먼저였던 기록.
그 어두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역사는 묻는다.
국가란 무엇이며,
윤리는 어디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150년.
긴 세월 동안
한반도는
강대국의 항로 위에 놓인 섬이었고,
수많은 선택은
우리 손보다
더 큰 손에서 결정되었다.
개항도,
식민도,
군정도,
전쟁도,
정전도,
동맹도.
모든 시대마다
국익이라는 이름은 반복되었고
민족의 운명은
그 뒤편에서 흔들렸다.
국가는
결코 천사가 아니었다.
힘은
정의를 대신했고,
약자는
역사의 비용을 지불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누군가의 선물이 아니라
거리에서 흘린 피와
광장의 함성과
학생과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루어 냈다.
사월의 봄도,
오월의 광주도,
유월의 거리도,
국민이 직접 써 내려간
민주주의의 교과서였다.
경제 또한
땀 흘린 노동자의 손이
공장을 밝히고,
새벽을 견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세계 시장을 향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세웠다.
그들의 손등에 맺힌 땀이
오늘의 번영을 키운 강이었다.
역사는 찬양만으로도,
증오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도 영원한 천사는 아니며,
어느 나라도 영원한 악마도 아니다.
국제정치는 언제나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인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는
환상을 버리고, 증오도 버리며,
사실을 바라보아야 한다.
기록을 읽고, 문서를 확인하고,
숨겨진 역사를 연구하며,
감정보다 객관을,
선동보다 성찰을 선택해야 한다.
평화는
기도만으로 오지 않는다.
정확한 현실 인식과,
주체적인 외교,
균형 잡힌 안보,
그리고
국민 모두가
역사를 배우려는 용기 위에서만
평화는 오래 머문다.
젊은 세대여.
너희는 열등감의 시대가 아니라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니 어느 나라에도
맹목적으로 기대지 말고,
어느 이념에도
눈을 맡기지 말며,
사실을 사랑하라.
역사를 공부하라.
진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과거를 바로 아는 것이
현재를 지키는 길이며,
현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미래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더 이상
누군가의 전초기지도,
누군가의 방패도,
누군가의 희생양도 되어서는 안 된다.
압록강의 바람과
한라산의 바람이
같은 하늘 아래 숨 쉬는 날,
동해의 파도와
서해의 물결이
더 이상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날,
그날이야말로
역사가 국익보다 인간을,
대결보다 공존을,
패권보다 평화를 선택한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의 주인이
역사 앞에 바치는
가장 긴 노래이며 가장 깊은 서약이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