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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연재 14 - 한미동맹과 한국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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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작성일시2026.07.27

조회수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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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서사시 - 한미관계 150년>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군사력 세계 5위권의 강국이다.

K-컬처는 지구촌을 정복하고,

기술과 산업은 세계를 선도한다.

그런데 우리 땅의 평화와 전쟁,

작전의 범위와 확전 여부는

외부 강대국의 손에 맡겨져 있다.

필리핀, 일본, 나토 회원국들은

주권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왜 우리만 70년 전 폐허 속에서 맺은

불평등 조약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넘어

제3국을 겨냥한 작전에 투입될 태세다.

대만 유사시 그렇게 될 것이란

이야기기가 정치, 언론에서 반복되면서

미중간 무력충돌이 벌어지면

오산, 군산, 평택, 경북 성주 주한미군기지가

중국 미사일 공격 대상이 되어

기지 주변 한국 국민이 전화에 휩싸여

전쟁의 희생자가 될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위험을

국민에 전혀 알리지 않고

대피 시설 등도 외면하고 있는 바

이것은 군사주권의 부재요,

국가 자존심의 치명적 상처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알 권리'에 있다.

알지 못하는 국민은 심판할 수 없고,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부는

머슴이 아닌 주인이 된다.

70여 년간 주한미군은

미 본토 수호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비밀 작전을 펼쳐왔고,

한국 정부는 동맹에 묶여 동조하면서

자국민에게는 그것을 감췄다.

그 결과 한국 국민은 주한미군이

한국을 위해서만

주둔하는 것으로 고마운 나라라고 감사할 뿐

제 나라 정부가 거짓말하면서

민주주의를 외면한 것도 탓하지 못했다.

국회도 주한미군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마치 한미가 대등한 관계인 것처럼 착각할

언행만을 일삼고 있다.

정치는 그 주인인 국민에게

나라의 군사주권이 미국에게 넘어가

일제 항복이후 새 점령군처럼

군림하고 있는 사실을 철저히 감췄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부정이고

한국 민주주의가 선진화로 가지 못하는

결정적 장애요인이다.

국가 전체의 생사 문제가 걸린

동맹에 대한 진실을 감추는 정치는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아니라

미국을 섬기는 정치다.

이러니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주한미군이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비밀리에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국제법상, A국이 B국에서

C국을 향한 군사 행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 불법을 '동맹'이라는 미명 아래

합법화한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본질이다.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미동맹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받들어 모시는 체질이 굳어 있다.

국민만 이것을 모른다.

거대 여야당이 서로 죽일 듯

난리를 치면서도

국가의 군사적 종속성과 국민 기만에 대해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며 공동보조를 취한다.

진보적 소수 정당도 엇비슷하다.

정치권이 동맹의 반국제법적 문제 등을

철저히 외면하고 민주주의의

공간을 좁힌 정치를 하면서

국민을 개돼지로 만드는

정치적 공동체가 되어 있다.

학교 교과서는

동맹의 진실을 가르치지 않는다.

어느 공무원 시험에도 그것이 나오지 않아

대부분의 공무원은

한미종속관계에 대해 까맣게 알지 못한다.

어느 대중매체도 그것을

진지하게 객관적으로 다루거나

해외의 평등한 군사동맹 등과

비교해서 언론 소비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한미동맹, SOFA 문제가 거론되면

정치권과 언론은

‘동맹 균열’, ‘안보 위협’이라는 프레임과

함께 북한이 즐거워할 것이고

남침 위협이 증대될 것이란

판박이 국보법 논리를 앞세운다.

정치권력은 한미동맹의 문제를

제기하면 이적, 친북 행위로 몰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

이 법은 분단의 명분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하면서

객관적 논의조차 ‘찬양·고무·동조’로 몰아

21세기 감옥으로 보내는

세계가 지탄하는 악법이다.

미국 유학파 엘리트와

워싱턴 특파원 출신 기자들은

미국의 논리를

떠받들고 유포하는 일꾼이 되어 있어

마치 심각한 세뇌상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 정보기관과의 밀거래가 있다는

소문이 나온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정부는 국민의 정치적 머슴이어야 하건만,

외국군의 비밀작전을 보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는 것은

헌법의 명백한 위배요,

민주주의의 유린이다.

필리핀,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과 맺은 군사관계를

한미관계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한다.

왜 그런가?

남북대치, 북한 남침 가능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외국과

비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한다.

그럴까?

한반도의 특수성을

다각도로 점검해야 하지만

유엔 회원국 190 여 개 국가 가운데

군사적 자주권을 외국군에게

넘긴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만으로도

대미 군사적 예속성의 문제는 심각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은

경제, 군사, 문화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나?

매년 국민 수천 만 명이 해외여행을 하는

오늘날

냉전시대 논리에 함몰되어

국보법이 체제 유지에 절대 필요하며

기울어진 운동장 동맹 논리만이

절대선이라는 논리를 부르짖는 것은

선진국 수준의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작태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한미동맹은 입체적으로 복잡하게

점검해야 하지만

미 국익 증진을 위해 한국의 대미 예속성을

유지,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동맹 덕에

한국의 오늘날이 있다는 논리에 단연 앞선다.

트럼프가 오늘날 동맹도 짓밟고

이란 등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미국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는데

미국은 건국 이래 거의 동일한 논리로

국내외 정치를 해온 나라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디언을 축출해 땅을 빼앗아 정착하고

노예제로 경제부흥을 꾀했으며

2차 대전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한 뒤

가짜뉴스로 베트남, 이라크 등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워

제 3 세계와 중동 등지에서

미 대통령의 지시로 암살이 꼬리를 문다.

미국이 아름다운 나라

즉 美國으로 불릴 이유가 거의 전무하다.

한미동맹의 다양한 형태인 조약, 협정, mou 등은

미국익을 위해 한국 정부, 국회에 재갈을 물려

한국의 민주주의를 일상적으로 짓밟아

한국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그 핵심 근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 부속협정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다.

이 조약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미국의 권리로 만들어

치외법권 속에

20세기 점령군의 모습으로 군림하게 하고

SOFA는 구체적으로 이 조약의 권리를

한국의 영토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상세하게 정해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대미 군사적 예속을 물샐틈없이

구조화한 경전과 같다.

그 결과

한미동맹이 한국 민주주의를 통제하고

남북 분단을 관리하면서

한국 국민을 개돼지 취급한다는

사실은 지구촌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미국은 좋은 나라, 고마운 나라로만 칭송되면서

미국의 실체에 대해 무지한 미맹(美盲)이 심각하다.

그 이유는 국민의 정치 머슴인 정치인이나

국민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역할의 일부를 하는

언론이 미국의 실체에 침묵하면서

그들의 선전홍보에 충실할 뿐

사실관계, 정론직필을 통한

진실전달과 비판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라 말한다.

즉 미국이

갖가지 방식으로 한국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손해며 심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대해 더 살펴보자.

박정희가 한미상호방위조약 문제점을

미국 코앞에 제시할 때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SOFA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협정으로

미국의 ‘권리’를 시행하는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한국

민주주의를 수 십 년 째

직접 통제하고 있는 조항이 제3조와 제28조다.

제3조와 제28조는

주한미군의 기지와 작전 등을 '비밀'로 분류하고

한국 정부가 동조하게 만들면서

결과적으로 한국 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알 권리 위에

존립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 준 주한미군 기지에서

국민의 땅 위에서 벌어지는 작전이

국민에게 비밀이라면,

그래서 국민이 언제 어떻게

강대국간 전쟁으로 희생될지 모른다면

그렇게 만든 정부는 더 이상 민주정부라는

이름에 합당치 않다.

제3조와 제28조를 자세히 살피면 모든 것이 자명해진다.

우선 제3조는 한국이 미군에게

제공한 시설과 구역에 대해

미국이 독자적으로 '가설, 운영, 경호 및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미군기지 내부는 한국의 법과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이 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주권과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핵심 장치다.

단순한 '정보 통제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와 국회가 주한미군의 활동을

통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질적 경로를 차단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영토의 '주인'이지만

미군에게 '열쇠'를 모두 넘겨준 꼴이다.

제28조는 제 3조로 규정된

주한미군에 대한 작전 등을

군사기밀 보호라는 명목으로

한국정부도 비밀로 유지하도록 해

주한미군의 대중·대러 군사행동을

비롯한 모든 중요한 군사 활동이

한국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적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블랙홀' 이 되고 있다.

제28조에 의해 주한미군에 대해

한미 두 나라가 논의하는

합동위원회라는 협의체를 두지만,

이는 한국 국회의 사후 승인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 행정부 간의

비공개 협의에 불과해서

한국 국회는 주한미군의 주요 군사 활동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SOFA 제3조와 제28조 두 조항이

만들어내는 최종 결과는

한국의 민주주의 공간이 붕괴되어

주권 국가가 아닌 군사적 예속국가로

전락, 방치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미군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법적 동의, 통제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알 수도 없는 위치로

이는 한국 국민과 정부의

민주적 의사결정 권한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한국 국민은 자신의 영토에서 벌어지는

외국군의 중대한 군사적 사안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선택권도, 통제권도 없는

무의미한 존재에 불과하며

주권 국가의 국민이 아닌,

동맹의 군사적 결정에 운명을 맡긴

개돼지로 전락한 꼴이다.

제3조와 제28조 대해 더 따져보자.

주한미군은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정찰·감시·군사공격 작전을 70 여년 간 펼치고 있는데

이를 국제법의 기본 원칙에 비춰보면

심각한 문제가 즉각 들어난다.

“A국이 B국 영토에서

C국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하는 것은

B국의 명시적·주권적 동의 없이는 불법이다.”

한국이 주한미군에 대한

SOFA 제3조와 제28조 규정에 동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의의 내용도, 작전의 내용도, 표적도

비밀로 하기로 한 것에 대한 문제는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심각하다.

그것은 아래와 같은 섬뜩한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비밀작전에 동조해

강대국간의 군사적 충돌로 한국이 피해를 당할 수 있는데

그런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으로

정부는 국민의 머슴이 아니라

동맹국 군사작전의 하수인이다.”

정부가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면서

외국군의 작전을 국민에게 숨기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기만이다.

그리고 기만 위에 선 질서는

어느 날 반드시 무너진다.

비밀이 흘러나와 국민이 진실을 알 때도 그렇고

그 비밀이 미사일이나 드론, 폭탄으로 돌아올 때 더욱 그렇다.

“주한미군과 중국 전투기가 2026년 상반기

서해상에서 대치한 것보다 심각한 사태가 벌어져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이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평택·오산·군산·성주를 향할 때,

'몰랐다'는 변명은 국민의 피 한 방울 막지 못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모르면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지 않으면 책임질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침묵하고 국민은 죽는다?

치외법권적 특권을 지닌 주한미군과

헌법적 책무를 외면한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을 중대한 위험에 노출시켰다면,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행위 여부에 대한 논란과 함께

예견 가능한 위험을 방치한

중대한 직무상 과실 또는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이라는

엄중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이며 주권이란 무엇인가.

보편의 법리와 국제 사회의 상식은 준엄하게 묻는다.

영토 안에 외국 군대가 갑질을 하며 주둔하는 것이

어찌 '당연한 권리'가 되며,

그 군대의 작전이 영토 주권자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비밀의 장막 뒤에서 행해지는 것이

어찌 민주주의라 하겠는가.

다른 한쪽의 권리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면,

그것은 대등한 조약이 아니요 지배의 변형일 뿐이다.

나토의 맹방들도, 이웃한 섬나라와

저 멀리 필리핀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스스로의 주권을 조율하는데

이 땅은

칠십 년 전의 정체된 시간에 스스로를 결박하고 있다.

조약이나 협정은 필요할 경우

박정희가 그런 것처럼 그 개폐를

협상 수단으로 쓸 수 있는 것으로

필리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재임시절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불법 살해한 혐의로

오늘날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재임시절 미국과 협상이 잘 되지 않으면

1998년 체결된 두 나라 군사협정인

'방문군 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 VFA)'의

파기를 선언한 바 있다.

VFA는 필리핀과 미국이

대등한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만든 협정으로

두테르테가 2020년 2월

미국에 VFA 종료를 공식 통보해

미국을 긴장하게 만든 뒤 나중에 폐기를 유보했다.

오늘날 트럼프가 외국과의 협정 등 국가 간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국가 원수는 국익과 대외 관계를

항상 국민의 머슴 입장에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 머슴들은 국민의 눈을 가렸고,

강대국의 학문과 논리에 길들여진

먹물들은 궤변 속에 침묵을 가르쳤다.

분단과 통일, 이 땅의 생사가 걸린 화두에 대해,

객관적 사고와 행동은 철저히 금지된다.

'고무·찬양·동조'의 프레임은

21세기에도 시민을 감옥에 가둔다.

세계를 무대 삼아 호흡하는

젊은 세대에게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생명

그 자체임에도,

국보법은 그 근간을 원천 차단한다.

누군가 묻는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나요.

질문은 해방의 시작이다.

침묵으로 만들어진 비정상적 벽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 벽은 '몰랐다'는 돌로 쌓였기 때문에

'알겠다'는 빛으로만 무너진다.

2026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질문이다.

왜 우리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국민은 모르는가.

왜 우리 세금이 외국군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알 권리가 없는가.

왜 주한미군은 우리 모르게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비밀 작전을 하며, 그것이 정당한가.

그렇게 하는 것이 대북 방어에 필요한가.

왜 미·중 전쟁이 나면 우리는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왜 1953년의 계약을 2026년까지도 갱신하지 않는가.

왜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원천 차단하는가.

질문이 쌓이면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며

변혁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1953년의 한국이 아니다.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5위,

문화력 세계 1위.

이 세 가지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물질적·군사적·문화적 주권의 조건은

이미 충족되었지만

정치적·군사적 주권의 현주소는

먼 나라 이야기라는 말이다.

“한국은 물질적으로는 강국이나

정치·군사적으로는 미완의 주권국이다.”

그 미완을 완성하는 일,

그것이 이 시대의 지상과제다.

국가는 경제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화의 인기만으로도,

스포츠의 승리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국가란 국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한 공동체가 된다.

그래서

주권은 헌법의 문장보다 무겁다.

나라마다 역사는 다르지만,

모든 민주주의는 하나의 원칙 위에 선다.

국민은 질문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설명할 책임이 있다.

국가의 운명은

국민의 동의 속에서

결정되어야 하고

동맹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건강하고

합리적인 약속이어야 한다.

성숙한 동맹은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견디는 힘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안보는 복잡하다."

그 말은 맞다.

그러나 복잡함이 국민의 알 권리를

영원히 대신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국제정치는 현실이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현실은 국민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때

폐허 속에서 시작했던 나라는

세계가 놀라는 경제를 만들었고,

문화가 국경을 넘었으며,

기술은 세계 시장을 흔들었다.

그렇다면

정치, 외교, 안보도

끊임없이 토론하고,

점검하고 필요하면 고쳐야 한다.

혁명, 개혁, 성숙한 민주주의는

거대한 함성보다

작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왜 그런가."

"다른 길은 없는가."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는가."

그 질문이 국가를 성장시키고,

제도를 바꾸며,

역사를 앞으로 밀어간다.

국가는 누군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동맹, 평화, 안보, 자유도

결국 국민의 신뢰와

민주적 합의 위에서만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알 권리, 질문할 권리, 바꿀 권리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논리다.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면 재검토와

SOFA 협정의 평등한 개정.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특권과

중러를 향한 미본토 수호 목적 작전의 중단,

전시작전통제권의 완전 환수 등등

이것이 군사주권 회복의 첫걸음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되찾고,

남북 평화체제를 당사자가 주도해야 한다.

드리는 말씀

이 연재는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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