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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의 역사서사시 연재 1- 한미관계 1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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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

작성일시2026.06.03

조회수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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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씀

연재될 한반도 근현대사 서사시는 미국 국무부 비밀해제 문서, FRUS(미국 외교관계 문서), 맥아더 점령 관련 역사 기록, CIA 비밀해제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한미근현대사는 주로 국내에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엮어져 미국 워싱턴 정부의 동북아 전략과 그 속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설명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존재는 엷어지고 남남, 남북 갈등이 주로 소개되었다. 이는 정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 행정부의 정책이 생략되는 근현대사는 역사바로잡기가 요구된다. 이 서사시 연재는 그런 시도의 하나이다. 역사는 360도 전 방위에서 살피는 자세로 기술되어야 한다. 생략과, 침묵 심지어 허위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읽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다.

******

시작하며

망국, 식민. 분단과 동족상잔 등을 거친

150 여 년의 모진 세월.

우리는 오랜 시간 미국을 ‘혈맹(血盟)’이라 불렀고,

그들이 흘린 젊은 피 위에 세워진

정치적·경제적 기적의 신화를 찬양해 왔다.

그러나 이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지난 70 여년간 침묵하고 감춰온

진짜 한미관계를 확인하고

미국의 실체를 모른 채 고정관념화 된

미맹(미맹)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한 세기 절반의 진실의 기록, 질문을 시작하려 한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신미양요의 그날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미국과 한반도의 관계는

한 편의 대 서사시.

그 우여곡절을 살피는 것은

희비극을 넘어

새로운 깨달음의 시작.

우리는 지금,

그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과거,

직시해야 할 현재,

그리고 스스로 써내려가야 할 미래.

기억하는 자가 미래를 산다

우리가 잘 모르거나,

혹은 잘못 알려진

150 여년의 여정을

펼쳐놓고 확인해야 한다.

미국은 혈맹이었습니까?

평등한 동반자였습니까?

미국익을 위한 예속적

이해관계였습니까?

한국이 원조, 은혜 속에 많이 챙겼습니까?

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과거를 확인, 청산하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는 것.

그 길 위에서만

진정한 평화와 번영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1871년 태평양 건너 한 제국의 야욕이

강화도 앞바다를 피로 물들인 신미양요의 그날

조선의 병사들은 낯선 침략군의

전함을 바라보며 칼을 뽑았다.

“물러가라, 서양의 침략자여!”

그 함성은 150 여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 가슴에 메아리친다.

그날의 총성은 단순한 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한반도와 미국, 얽히고설킨 운명의 서막이었다.

1905년 동경 밀실에서 맺은

추악한 ‘가쓰라–태프트 밀약.’

미국은 필리핀을 집어삼키는 대가로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하고 축복했다.

그 음험한 독기 속에 을사늑약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도려냈다.

안중근 장군의 대일 선전포고가 작열했으나

1910년 경술년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침몰시켰다.

그 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의

함성이 하늘을 흔들고 절규가 온 땅을 진동할 때,

서울과 도쿄의 미국 공관으로 내려진 훈령은 냉혹했다.

“조선인의 독립운동에 미국이 동조하거나

지원하는 인상을 절대 주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세계의 정의를 향해 손을 뻗을 때

미국은 철저히 이익만을 계산했다.

거리의 청년들이 태극기를 들고 쓰러지는데

열강의 회의장은 침묵했다.

피 묻은 만세 소리는

지구촌 양심의 창문 앞에서 절망 속에 통곡했다.

일본의 패망이 짙어 가던

태평양 전쟁의 끝자락이 보일 때,

미국은 원자탄을 터뜨려

소련의 극동 남하를 저지하는 북위 38도선을 그었다.

그들의 한반도 정책은

냉전 대비 극동 미군기지화.

민족의 허리는 두 동강이 나서 갈라졌다.

미국과 소련이 합의한

그 선은

동서 진영의 대치선으로 만들어져

수천만의 삶을 둘로 가르게 된다.

일제 항복과 조선 해방의 날이 왔다.

미군은 남쪽으로 들어왔고

소련군은 북쪽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마침내

새로운 나라가 태어날 것이라 믿었다.

감옥에서 돌아온 이들,

독립투쟁에서 내려온 이들,

들판에서 태극기를 숨겨왔던 이들이

서로 얼싸안으며 외쳤다.

“이제 우리 힘으로 나라를 세우자.”

하지만 해방의 새벽은 자주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조선 민중의 독립 투쟁의

역사를 외면했다.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의 지휘 아래,

미국 정부는 한반도를 그저

‘일본의 식민지’로 대하며

패전국 일본과 동일한 군정을 실시했다.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생적으로 세워진 인민위원회도

민중의 의지도

역사의 갈망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총독부 건물엔 다시 불이 켜졌고

조선총독부의 관리들이 다시 중용되고,

민족을 배반했던 친일 경찰들이

권좌로 복귀했다.

해방된 조선의 민중은

새로 온 점령군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해방은 왔지만

청산은 오지 않았다.

어제의 순사가

오늘의 경찰이 되었다.

누군가는 울부짖었다.

“왜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가가 쫓겨나고

친일파가 권력을 잡는가.”

그것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었다.

미국은 일본을 반공의 성벽으로 세우고

남한을 거대한 전략의 전초기지로 만들려 했다.

오늘날까지 이 땅을 좀먹는 친일 미 청산의 독극물,

그 원천적 책임은

해방정국의 거대한 설계를 주도한 미국에게 있고

독재자 이승만은 그 속에서

권력을 탐하는 하수인이 되었다.

미국은 단독정부 수립을 강행해

분단을 고착화하려했다.

미국의 획책에 격렬하게 반대한

제주에서 봉기, 진압 속에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4·3의 산과 마을엔

미국을 추종하는 반민족세력의

총탄이 쏟아졌다.

어머니는 불타는 초가 앞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고

바다는 시신을 떠안은 채 흐느꼈다.

공산주의 배후라는 가짜뉴스 속에

자국 군대와 친일 세력의 총칼에

도민 10분의 1이 학살당했다.

여수순천의 병사들은

양심과 명령 사이에서 외치며 궐기했다.

“동족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

미국과 이승만은 어린이까지

빨갱이로 몰아

학살로 흐른 피가 대지를 적셨다.

친일이라 불리던 이름들이

반공이라는 새 이름으로 변신했다.

민족반역자를 잡으러 나선 반민특위에

친일 경찰이 총을 들고 쳐들어갔다.

이승만은 말했다

“내가 지시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자물쇠가

이 나라의 입에 채워졌다.

묻지 말라, 따지지 말라, 기억하지 말라.

그리고 1950년 여름

군사분계선 남북에서 총격전이

꼬리를 물다 38도선이 무너지며

전면전쟁이 터져 산하가 불타올랐다.

애치슨이 그은 방어선 바깥에 있던 땅에서

포성이 울렸을 때 미국이 다시 왔다.

이번엔 유엔의 깃발을 달고 다국적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의 배 위에

일본 청년들도 타고 있었다.

한반도의 전쟁이 일본에게

폐허에서 일어설 발판을 주었다.

중국군이 참전한 뒤

만주와 북한에 핵 공격을 감행하자!

맥아더의 목소리가 커지자

3차 대전을 원치 않았던 트루먼이

그를 갈아 치웠다.

냉전 논리 속에 전선이 교착되자

북녘 하늘은 미군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불타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의

도시보다 더 참혹하게,

평양의 하늘, 함흥의 골목, 원산의 항구

지상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 빨래판처럼 변했다.

1953년 총성이 멎었다.

그리고 휴전.

평화협정은 멀어지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게 분단 상태 유지가 최상의 조건이었다.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최전방 부대가 될 수 있었기에.

7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쇠사슬,

주한미군사령관은 3개의 모자를 쓰고

적절한 긴장 속 전쟁 방지, 분단지속을 위해

남북을 관리한다.

남북이 손을 맞잡으려 할 때마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앞세워 안보 튼튼을 외치면서

주한미군의 중국, 러시아를 향한 비밀작전을 전개했다.

한국 정부도 그 비밀에 입 다물고

미국에 동조하면서

한국민은 까맣게 모르고

개돼지의 가짜평화를 즐긴다.

미국 국익을 위해

한국헌법과 민주주의는 실종상태.

한미정부는 주한미군이 대북 방어용이라고만 합창하고

한미동맹은 남북교류협력으로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전략과

작계 5015, 5026에 압축된

선제타격, 참수작전 등이 공개된다.

모두를 향한 심리전 차원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미국은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며

한국의 군사적 대미 종속을 심화시켰다.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세 번이나 손을 잡고

남북국가연합도 가능할 수 있게 했던 2018년 열기는

트럼프의 제동과 압박 속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은 그 뒤에 나왔다.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다.

동북아에 신냉전의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남쪽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세계 선진국 수준이고

K-팝, 한류는 지구촌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사적 번영의 그림자 아래

지구촌의 궁금증은 커지고 있다.

왜 그들은 아직도

작전권을 완전히 갖지 못하는가.

왜 평화협정은 오지 않는가.

왜 강대국의 전략 속에서

한반도는 늘 전쟁의 문턱에 서 있는가.

대한민국은 자주의 목소리를 잃은 채

왜 불편해 하지 않는가.

한미관계의 150 여년은

제국과 약소국 사이의 역사이며

동맹과 지배, 통제의 기억이고

희생과 번영이 뒤엉킨 거대한 서사다.

필요한 것은 진실을 확인하는 성찰이다.

감춰진 미국 정부 비밀문서를 읽고

침묵당한 목소리를 듣고

왜곡된 기억을 바로 세우는 일.

다시는 이 땅이

누구의 전략지도 속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 나라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민간인들

제주에서, 여순에서, 대전에서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미군사고문단의 보고서에는

"불순세력 제거"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숫자로 처리되었고, 통계로 소멸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한다

기록되지 않아도, 기억은 살아 있다

어머니의 눈물, 아버지의 한숨

아이들의 울음, 노인의 절규

이 서사시는 그들을 위한 것이다

잊혀진 자들을 위한 추도가

침묵 속에 묻힌 진실을 위한

낮은 목소리의 증언이다

해방정국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진정한 해방을 이루지 못했기에

그 날까지 우리는 써 내려갈 것이다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이제 한반도는 폐허 속 약소국을 탈피해

세계의 강물과 무역이 만나는 나라,

혁명을 창출한 촛불과 민주주의의 기억을 가진 나라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전초 기지가 아니라

지주 속에 스스로 평화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강화의 바다에서 시작된 포성 이후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눈물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역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철조망 너머의 바람이

전쟁의 냄새 대신

평화의 풀 향기를 실어오는 날,

제주 바다와 여순, 광주의 혼령들

분단 비극 속에 산화한 단군 후손 전사들도

희생된 수많은 아이들과 부녀자들도

비로소 조용히 말할 것이다.

“이제는,

정말 끝났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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