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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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건국 이래 최대의 전쟁영웅으로 자타가 공인해 온 인물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서다. 그는 호주에서 생존한 전쟁 영웅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 이 나라 최고의 정예특별부대 SAS에서 복무했다.
그는 호주에서 살아있는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2006년 무공훈장, 2011년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데 이어 2012년 우수군인으로 선정되었다. 2013년 제대한 뒤 퀸스랜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2015년 퀸스랜드의 TV 방송사의 부사장으로 취임하고 후 고속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는 세계 1차 대전이래 호주 병사가 보여준 용기와 희생의 상징이었으며 완전한 병사의 전형이라고 인정받았다. 호주의 한 군사전문가는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거칠면서 활달하고 날카로우며 지적 능력이 탁월해서 어떤 역경에 처한다 해도 목적을 달성하고 귀환할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국민이 존경하는 진짜 사나이 군인중의 군인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도 분수가 있지 국민적 영웅이 추악한 전쟁범죄자라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다. 그가아프칸 복무중 저지른 전쟁범죄가 폭로되면서 그의 빛나는 이미지는 산산조각 나고 호주 사회를 경악케 했다.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 3개 신문은 2018년 로버트 스미스(44살)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해외파병 되어 군 복무하는 동안 아프칸에서 벌어진 여러 작전에서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해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로버트 스미스 전 상병은 2009-2012년 아프칸에서 근무할 당시 비무장 포로 또는 민간인 6 명을 살해하는데 가담했다. 스미스는 수삽을 채운 농부를 10m 절벽 아래로 발로 차 떨어뜨려 이빨을 부러뜨렸고 결국 사망케 해다. 당시 아프칸인은 공포에 질려 나뭇잎처럼 벌벌 떨었다. 스미스는 부상한 아프칸인을 부하를 시켜 머리를 총으로 쏘아 살해하도록 강요했다. 그는 그 상황을 자신이 본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떠벌렸다.
스미스는 기관총을 쏘아 포로로 잡은 아프칸 전사를 살해하고 그가 다리에 끼고 있던 의족을 벗겨 전리품으로 챙겼고 뒤헤 부대원들이 술을 마실 때 잔으로 사용토록 했다. 스미스는 동료군인을 협박하고 못살게 굴렀다. 그 가운데 하나는 스미스가 하급자에게 ‘ 다음 정찰을 나가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내 뒷머리에 총알이 박힐 줄 알아’라고 협박한 사실이다.
위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스미스는 제네바 협약에 규정된 전쟁범죄인에 해당했다. 이 협약은 전쟁 중에 야만적 행위는 금지해야 하며 이에 따라 포로에 대한 고문이나 살인 또는 잔혹행위를 금하면서 부상병이나 병든 병사에 대해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호주를 발칵 뒤집어놓은 언론보도에서 전쟁범죄인으로 지목된 주인공인 제대군인 로버트 스미스는 아프카니스탄 전쟁 등에 참여해 빛나는 무공을 세워 수많은 훈장을 받은데 이어 영국 및 영연방 왕국 회원국의 군인에게 수여되는 최고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고 상병으로 제대한 전직군인이었다. 2011년 그는 자신의 부대를 공격한 탈리반 기관총 사수들을 혼자서 격퇴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m 가까운 장신인 그는 2010년 탈리반 반군의 기관총에 맞아 쓰러진 동료를 단신으로 구한 공로로 국가 최고훈장을 수여해 그 명성이 하늘을 찔렀다.
이 훈장은 전쟁 중 적과 맞서 싸우면서 나타낸 뛰어난 용맹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육군, 해군, 공군의 장교, 부사관, 병사 등을 상대로 수여하는데 1856년부터 현재까지 총 1천6 백 여 명이 수여받았을 뿐이다. 그는 17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아프칸에서 전공을 세운 것이 인정받아 자신의 초상화가 호주 전쟁 기념관에 게시되어 있다. 스미스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나온 직후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격렬한 어조로 반박했다.
-나는 전투규정을 항상 준수했다.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 민간인 살해는 전투 중에 발생한 것이고 일부는 사실무근이다. 이는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한 군인에 대한 최악의 모욕이다. 이번 사태는 나를 시기한 옛 동료들이 거짓말을 하고 모함하려 내 등 뒤에 총질을 한 것이다.
-나를 모함하는 이 보도는 가짜뉴스다. 언론인들이 낚시의 미끼를 무는 고기처럼 허위사실에 현혹되어 망발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즉각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이며 재판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규명되도록 노력해 이들 엉터리 언론에 철퇴를 가할 것이다.
스미스는 공언한대로 즉각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심리가 시작되면서 호주에서 발생한 금세기 최대의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스미스가 호주 역사상 가장 명예스런 훈장을 받은 살아있는 전직 군인이었고 그가 과연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인물로 전락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스미스가 언론을 제소한 뒤 호주가 지난 2001-2021년까지 아프칸에 군대를 파견한 바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참전 군인들이 불미스런 일을 저질렀는지 여부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호주 국방부는 스미스 사건에 대해 민사 소송일 뿐이라며 언급을 자제했다.
호주에서 전쟁 범죄에 대한 소송이 공개된 재판에서 심리된 것은 최초였다. 이 사건은 호주 정부가 아프칸에 파병된 호주 특수부대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군인 25 명이 2007-2013년 동안 아프칸 민간인 39 명을 살해하는데 가담한 사실을 확인해 1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한 뒤 3년 만에 발생했다. 소송은 4년이나 지속되었다. 재판 기간 동안 40 명의 증인이 출석했는데 그 가운데는 아프칸 주민, 국방장관, SAS 부대 제대군인 등이 포함돼 스미스의 삶에 대해 세세한 것 까지 밝혀졌다. 재란 과정에서는 베일에 싸여있던 호주 정예부대의 내면에 대한 비밀들이 밝혀졌다. 증언에 나선 전현직 부대원들은 부대내 불미스런 일들이 부대 내의 경직된 분위기 때문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스미스가 언론사들을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협의로 고소하면서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보도가 사실이라는 점을 법정에서 확인받아야 했다. 호주의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2021년 6월 재판이 시드니의 연방법원에서 시작되었다. 피소된 언론사들은 보도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하는데 노력했다. 스미스는 언론보도가 가짜뉴스라고 연일 떠들고 호주 국방부 등이 침묵하면서 호주 언론은 후속 보도를 계속 이어갔다.
그의 부대원이었던 전직 군인은 절벽에서 떠밀려 죽은 아프칸 인에 대해 증언했고 이는 당시 현장에 있던 아프칸 민간인들의 화상 증언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그러나 스미스와 다른 동료 군인들은 그는 탈리반 반군 정찰병이었고 그를 살해한 것은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스미스의 명예에 금이 가는 새로운 증언들이 제기되었다. 그의 전처는 그가 집 뒤뜰에 군인들이 의족으로 술을 마시는 사진과 군사기밀이 담긴 유에스비를 어린이 점심 도시락에 담아 묻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그에 대해 변명했다.
-내가 그 유에스비를 한때 소유했지만 땅에 묻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가 그가 말을 바꿔다.
-나는 그 유에스비를 휘발유로 태워버렸는데 그것은 증거를 없애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그의 친구가 충격적인 새로운 증언을 제기하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스미스는 아프칸 민간인을 살해하는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이 증언은 전쟁범죄에 대한 것으로 명예훼손이라는 민사의 영역이 아닌 형사 사건에 속했다. 결국 스미스가 범한 전쟁범죄에 대한 사실이 언론에서 보도됐다.
-스미스는 현재 호주 군범죄특별수사대가 수사 중인 호주 특수부대 SAS 군인들의 아프칸 민간인 살해 사건과 관련된 세 명 가운데 하나다.
새로운 전쟁범죄 사실이 밝혀지면서 SAS군인 세 사람이 2012년 아프칸 밀 경작지에서 비무장상태인 아프칸인을 사살해 저지른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은 호주 특별대가 저지른 많은 전쟁범죄 사실 때문에 이 부대와의 합동작전을 중단할 것을 경고한다고 호주 정부에 통고했다.
2.
스미스는 1978년 11월 호주의 한 법관의 큰 아들로 태어나 1995년 고교를 졸업한 뒤 다음해인 1996년 18살이 되자 군에 입대했다. 그는 훈련을 마친 뒤 소총부대에 배속되어 분대장이 되었고 그 1999년 동티모르에 주둔중인 파병부대원이 되었다. 스미스는 1998년 에마를 시드니에서 만나 2003년 결혼했다. 2010년 쌍둥이 딸이 태어났고 2015년 제대하면서 이혼했다.
그는 2004년 피지. 2005-2006년 이라크에 파견되었다가 2006-2007년 아프칸에 배치되었다. 2009년 하사관 교육을 마친 뒤 수색대에 배속되었다. 그 후 아시아 지역에서 근무한 뒤 2009-2012년 아프칸에 재배치됐다.
2011년 1월 23일 그는 호주 총통가 참가한 시상식에서 빅토리아 십자 무공훈장을 받았다. 당시 SAS 일부 전현직 부대원들은 그가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식의 문제를 제기했었던 것으로 후에 밝혀졌다. 2014년 1월 그는 아프칸에서 50 차례의 위험한 작전에서 소부대를 성공적으로 지휘한 공로로 군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그의 초상화가 그가 입고 있던 군복과 함께 호주 전쟁기념관에 게시됐다. 그는 훈장을 받은 뒤 전방 수색대 지휘관으로 복무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말했다.
-수색대에 배속되면 그것은 호주 최정예부대 SAS의 최강 군인이 되는 것과 같고 그렇게 되면 비로소 사나이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그는 2013년 35살이 되자 하사로 일선부대에서 물러나 2015년까지 예비군부대에서 근무했다. 그는 2013년 퀸스랜드 대학에서 그에게 경영학 공부를 할 수 있게 장학금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38살이 되던 2016년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18살에 입대해서 대학에 가지 못했고 일반사회에 적응할 전문성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부터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을 갖겠다.
그는 2015년 4월 퀸스랜드 TV 그룹의 한 회사에 부 책임자로 취업했고 두 달 뒤 최고 책임자로 승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2017년 호주 군수사당국이 스미스가 포함된 불법적인 전쟁 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스미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2006년 아프칸 코라 파스전투에서 한 민간인을 탈리반 소속원이라고 주장하며 살해한 사건에 대해 호주 여러 언론이 일시에 관련기사를 쏟아냈다.
-호주 SAS 부대원 2명이 순찰을 나갔다가 15-18세로 추정되는 아프칸 소년 한 사람이 호주군 초소로 다가왔다가 되돌아가가는 것을 목격했으나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본부에 보고했다. 그러자 스미스와 다른 부대원 1명이 현장으로 달려와 9mm 권총으로 사살한 뒤 본부에는 적 두 명을 사살했다고 보고했다. 스미스는 순찰 도중 적을 발견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맨 먼저 보고된 내용은 비무장 소년 한 명이라고 되어 있었던 점이 문제가 되었다. 본부에서 스미스가 보고한 내용을 캐묻자 스미스는 자신이 기억을 잘못했다고 얼버무리면서 일단락 됐다.
이 보도가 나간 뒤 2017년 10월 호주 군 당국이 아프칸에서 SAS 부대원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스미스는 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 군 당국이 해외참전 용사들에 대해 조사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국가의 명을 받고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스미스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2018년 6월 SAS 부대원들이 2012년 9월 아프칸 다르완 부락을 공격할 때 아프칸 민간인 한 명에게 수갑을 채운 뒤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사망케 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 보도가 나간 뒤 호주의 언론들이 스미스에게 치명적인 사실들을 보도했다.
-스미스는 2012년 아프칸 다르완 부락 민간인 피살 사건에 연루된 SAS 부대원 가운데 하나로 밝혀졌다. 스미스는 동료 군인들에게 가혹행위를 했으며 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스미스는 그해 8월 동료 부대원에게 이슬람교의 지도자 한 명을 살해하도록 명령했다. 당시 그 지도자는 비무장이었고 포로로 잡힌 상태였지만 모스크 성당에서 끌려나와 살해됐다. 이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스미스는 이들 보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다.
-나는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스미스는 자신이 군부대내에서 동료들을 못살게 군 위선자라고 주장한 옛 동료들의 증언을 언론이 보도하자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것은 나를 흠집 내기 위해 언론이 과장한 것으로 전혀 사실 무근이다. 언론이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 그런 것을 조작한 것은 비열한 행위다. 나를 모함한 옛 동료들은 위선자다. 내가 부하들을 괴롭혔다는 것은 그들이 지금 나에게 하고 있는 짓과 같다. 이는 비겁한 행위다. 그들이 그늘에 숨어서 하는 짓은 집단 겁쟁이 짓과 같다. 나는 남을 괴롭히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그것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다.
스미스는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그는 아프칸 복무 중 전쟁범죄에 대한 혐의로 내사를 받기 시작했고 2018년 11월 연방검찰이 본격 수사를 개시했다. 아프칸 현지인들은 호주 정부의 전쟁범죄 조사에 대해 환영했다.
-호주 정부의 행동은 20여 년간에 걸쳐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에 의해 자행된 전쟁범죄에 대한 진상 규명의 첫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연합군에 의해 희생되거나 그들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족은 진실이 전면적으로 공개되는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그들에 의해 초래된 피해에 대해 배상해야 할 것이다.
- 탐사저널리즘이 연합군의 전쟁범죄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대단히 훌륭하다. 언론의 진상 규명 노력으로 진실에 가까이 갈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할 것이다. 호주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사과해야 할 책무가 있다.
스미스가 제소했던 언론사의 한 기자는 스미스가 받은 훈장이 어떻게 처리되어야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고 분노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진실 규명을 통해 밝혀진 것은 그가 뻔뻔한 거짓말 장이라는 점이다. 이번을 계기로 미국이 주도한 아프간 전쟁에 대한 모든 진상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호주 정부도 호주 군지휘부나 의회가 전쟁범죄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눈감아 주었는지 등도 규명되어야 한다.
3.
2023년 6월 재판부는 스미스가 언론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11주 동안 증인을 소환하는 방식 등으로 심리를 벌인 끝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호주에서 호주군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범죄에 대해 최초로 내려진 법정 심판으로 기록됐다. 재판부는 스미스가 아프칸 민간인 4 명을 살해하면서 복무규정을 어긴 것이 입증되었다고 판시, 스미스는 패소했다. 당시 판결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아프칸과 같은 복잡한 전쟁터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사고는 어느 것도 명확한 것은 없다. 이는 모든 전쟁도 마찬가지다. 거짓이나 꾸며낸 것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작업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중단할 수는 없다. 언론이 스미스에 대해 보도한 전쟁범죄 혐의에 대한 기사는 충분한 근거에 입각해 진실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반면 스미스는 군복무법과 윤리 규정을 위배했고 그것은 범죄에 해당한다. 이런 행위는 전쟁터에서 민간인과 포로를 보호할 것을 규정한 제네바협약에 위배된다.
- 스미스에게 제기된 네 건의 살해 혐의는 사실로 밝혀졌다. 2009년 4월 위스키 108 작전에서 SAS는 탈리반 부대를 폭격하고 기습해 비밀지하 터널에서 두 명이 잡혔을 때 의족한 사람을 스미스가 살해했다. 스미스는 아프칸인을 엎어놓고 그의 등에 기관총 4-5발을 발사해 살해하고 그의 의족을 벗겨 부대로 가져가 부하들이 술을 마실 때 술잔대신 사용토록 지시했다. 이는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다.
- 2006년 6월 2일 SAS 부대원 2 명은 매복해 있다가 그 소년이 70m 정도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소년은 비무장이었다. 그 곳은 탈레반이나 민간인들이 항상 이용하는 언덕길이었다. 두 병사는 후에 그 소년이 부근에 숨어 있던 폭도들에게 협조하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두 병사는 자신들이 숨어 있던 장소에서 상당 거리 떨어진 곳을 소년이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소년은 배낭을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향을 바꿔 걸어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부대원들은 당시 소년에게 발사하지 않았다. 그를 사살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닥칠 위험을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대원들은 발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행동은 당시 그들의 임무가 잠복해서 주변을 관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미스는 그러나 다른 내용으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두 명의 아프칸 놈팽이가 어두워지기 두 시간 전 어슬렁거리며 우리가 잠복해 있던 관측소로 접근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SAS 부대원이 두 놈을 사살했다. 그 놈들이 우리가 숨어 있는 것을 알아챘는데도 그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고 현장에서 물러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동료 부대원은 그들을 제거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시체를 처리하고 다시 초소로 돌아왔다. 나는 이런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다.
스미스가 현장 상황에 대해 다른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지적을 받았을 때 그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스미스가 동일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실을 놓고 왜 총을 발사했는지 등에 대해 말을 바꾼 것은 전투 중 규정에 어긋나는 짓을 저지른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스미스는 과거 동료들이 자신이 무공훈장 등을 받은 것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많은 전직 부대원들이 동일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매우 주목된다. 이는 SAS 지휘부가 소속 군인들에 대한 감독과 관리를 부실하게 했다는 의혹으로 연결되고 있다.
실제 일부 칭송받는 군인들의 전쟁 영웅행위가 일부는 정부나 군 당국이 자신들의 해외파병 결정이 정당했다는 것을 내세위기 위해 부풀려진 결과로 지적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전적을 과대 포장하고 포상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로 지탄 받아야 할 것이다. 스미스가 최고 훈장을 받은 것에 대한 동료 부대원들의 문제제기가 그를 영웅으로 만든 부대 지휘관들을 상대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2017-18년 성명 미상의 여인과 6개월간 동거했으며 그녀가 낙태수술을 하려는 것을 사설탐정을 고용해 감시하고 그녀를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스미스는 그것을 부인했지만 거짓인 것이 들통이 났다. 스미스는 2017년 12월 캔바라의 한 호텔에 투숙한 그 여인을 폭행했다. 그 여인이 술에 취해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치자 스미스가 그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녀는 법정에 서서 울면서 스미스가 어떻게 자신에게 폭행을 가했는지 증언했다. 스미스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스미스는 그런 사실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그녀의 상처를 얼음찜질하는 등 도왔다고 주장했으나 다 허위로 밝혀졌다.
4.
2023년 7월 스미스는 일심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그의 소속 TV 사가 그에 반대하면서 1백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법적 조치가 취해졌다. 스미스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벅찬 거금이었고 결국 항소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패소 직후 방송사 사장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재판에서 패소했지만 형사 사건으로 피소되지는 않았다. 호주 형법에 따르면 민사가 형사로 이어지려면 복잡한 입증 절차가 요구되기 때문이었다.
호주 전쟁기념관 위원회는 스미스가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인 된 뒤 그에게 호주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한 결정이 문제가 있었으며 추후 유사한 사태가 발생치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탈리반 대변인은 스미스의 재판이 일단락되자 아프칸에서 외국군에 의해 무수한 전쟁범죄의 하나라고 지적하면서도 국제적으로 그것을 규명하는 시도가 취해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스미스 사건으로 호주 군당국이 해외 파병군인의 전쟁범죄 가능성에 대해 전현직 군인 40 여 명을 상대로 조사했지만 단 1명만이 기소됐을 뿐이다. 호주는 2001년 아프간전 발발 이후 20년간 총 3만9천여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 ps ; 호주 연방경찰은 2026년 4월 7일 스미스(48)가 2009∼2012년 아프간전 참전 당시 현지 민간인 여러 명의 불법 살해 사건과 관련해 5건의 전쟁범죄에 따른 살인 혐의로 체포, 기소했다. 그는 유죄가 입증될 경우 최대 종신형을 받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