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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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예술의 한 종류이지만, 표현하는 도구가 언어라는 점에서 시각적·감각적 매체를 사용하는 다른 예술 분야들과는 명확히 분리된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문학을 비롯한 예술 창작 분야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인간의 고유 성역이라 믿었던 창의성에 AI가 도전하고 있어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예술의 본질이 훼손되고 인간 작가의 입지가 좁아질 것에 대한 불안감와 윤리적 비판과 함께 AI가 예술가의 영감을 확장하고 실현해 주는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인간은 신비한 존재 - 인문학의 기초가 돼야
AI는 향후 계속 진화할 가능성이 커서 그럴 경우 인간을 압도하고 지배할 것 아니냐 하는 전망도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잠재력을 살필 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잠재력은 인문학적으로 볼 때 신비하다고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미래의 예술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닌, 그 작품 뒤에 숨겨진 인간적 맥락과 철학에 의해 가치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AI가 완벽한 문장이나 그림, 음악을 창작할 수는 있어도, 그 작품을 쓰기까지 작가가 겪은 삶의 고통과 시대적 아픔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 예술의 가치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작가 고유의 삶의 맥락과 설명되지 않는 인간적 여백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AI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발명품이라는 점을 미래로 연결시킬 경우 인간이 여전히 AI가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에서 지배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류고고학이나 유사이래의 문화, 문명에 의해 추정이 가능하다.
5대양6대주에서 활약한 인간의 다양한 유전적 잠재력은 인문학의 기초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학의 첫 출발은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고고학과 생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현존 70억 인류는 15 - 20만 년 전 아프리카 한 여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할 때 유사이래의 5대양 6대주의 문화, 문명은 한 어머니로부터 기원한 DNA를 지닌 호모 사피엔스의 잠재력이 환경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통신과 교통수단이 발달한 뒤 특정 스포츠, 예능 분야의 불모지에서 세계적 스타가 탄생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DNA가 발현하는 것으로 이런 사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 음악가가 세계최고로 우뚝 서거나 흑인 노예 후손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그런 사례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밖에 건축, 의상, 음악, 미술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한없이 다양한 제작기법 등이 꽃핀 것도 중요하다.
인문학은 위에 소개한 인간의 생물학적 및 환경적 측면에 대한 지식의 총집합이어야 하는데 지구촌의 인문학은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크고 그것이 오늘날 지구촌의 여러 비극적 상황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즉 지구촌 전체 차원에서 인간과 사회를 관찰, 분석하는 관점이 매우 중요한데 이런 점이 생략되고 서양문명 과 여타 지역 문명이 우열의 차이가 있다거나 특정 인종, 국가가 선도적 위치에 있다는 식으로 우열을 가리고 선진, 후진으로 분류하는 것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점령과 자원 약탈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인문학이 동원된 결과가 오늘날의 지구촌의 약육강식, 적자생존 논리를 정착시켰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앞장선 인종분리주의나 문화적 우열론적 시각이 지난 18세기 이래 끼친 폐해가 엄청나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인 바 이는 올바른 인문학의 정립을 통해 첫 단추부터 다시 꿰는 시각의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문학의 수단인 인간의 언어 능력 탁월
인간은 언어의 마법사라고 할 수 있다. 제한된 음소 몇 개로 무한한 의미를 만들어 내고, 그 언어로 다시 세계를 재구성한다. 게다가 언어는 단순히 전달 도구가 아니라 사고 자체를 형성한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세계를 나누는 방식도 달라진다. 언어는 문학의 도구가 되고 있다. 문학작품이 유사 이래 5대양6대주에 넘쳐나고 현재와 미래도 계속 양산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언어 능력과 잠재력이 탁월하기 때문으로 이를 살펴보자.
언어는 전 세계적으로 5천 - 7천 개가 존재한다. 정확한 집계는 언어와 방언간의 차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의사소통 방식으로는 언어 외에 휘파람, 점자, 기호와 같이 시청각을 이용하는 방법이 손꼽힌다. 그 가운데 언어가 가장 심오한 수단이다. 단일한 조상의 후예인 인류가 언어에 대한 능력과 잠재력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한 것인가 감탄치 않을 수 없다.
언어는 역사를 통해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겪었는데 오늘날의 언어 50-90%는 세계화와 신식민주의 등의 영향으로 2100년 안에 소멸될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경제적으로 강력한 언어가 결국 다른 언어를 지배하게 된다. 현재 20개에 달하는 주요 언어는 전체 세계인의 50%가 사용하고 있다. 이들 주요 언어 1개 언어 당 약 5천 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언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언어의 철학과 관련해서 단어나 말이 인간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 이래의 주요한 논쟁이 되었다. 장자크 루소는 언어가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한 반면 이마뉴엘 칸트는 이성과 논리적 사고에서 연유한다고 주장했다. 21세기 학자들은 철학적 차원에서 언어를 연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류는 수많은 언어를 창조하고 그 용도에 대해서도 다각적 해석을 하면서 수많은 문학작품을 쏟아낸 것이다.
한 어머니의 후손인 인류가 환경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다채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주목하면 인간의 능력과 잠재력이 무한하며, 인류 미래가 지속적으로 진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현대인 두뇌, 구석기 시대인과 동일
인간의 잠재력이 신비할 정도로 무한하다고 했는데 미래에는 어떨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인간이 AI를 계속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의 근저에는 인간이 신비할 정도의 가공할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에 기반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살피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다.
인간 두뇌의 기능은 언제 현재 수준에 도달했는가? 인류의 진화는 이미 멈춘 것인가? 이 질문은 인류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이 교차하는 핵심 쟁점으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인간 두뇌의 해부학적 구조는 수만 년 전에 이미 현대와 유사한 형태로 정착했으나, 그 기능적 진화와 작동 방식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즉 하드웨어는 변치 않지만 소프트웨어는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당시 두개골 화석과 뇌 용적 분석을 살펴보면, 평균 뇌 크기와 주요 신경 구조는 현대 인류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언어 처리, 추상적 사고, 사회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FC) 또한 이 시기에 이미 충분히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전두엽은 뇌의 가장 앞부분에 위치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경영자' 혹은 '관제탑' 역할을 수행한다. 원시시대 동굴 벽화, 장례 의식, 장신구 제작과 같은 상징적 행위는 당시 인류가 고도의 인지 능력과 정서 표현 능력을 갖추었음을 입증하는 대표적 증거로 제시된다.
3만 년 전 크로마뇽인의 아기를 현대 사회로 데려와 교육한다면 스마트폰을 조작하고 양자역학을 푸는 현대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즉, 우리 뇌라는 ‘생물학적 기계’는 이미 선사시대 야생 환경에 최적화된 설계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문학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이 탁월해서 5대양6대주에서 다양한 문화, 문명을 창조하는데 기여했는데 이는 AI시대에도 역시 그럴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소프트웨어의 격변: 문화와 기술이 재구성하는 뇌
인류의 뇌는 그 하드웨어는 축소된 반면 기능적 측면인 소프트웨어는 진화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특 뇌의 용량은 약 1만 년 전 농경 사회 진입 이후 오히려 10~15%가량 줄어들었다는데 현대 과학은 이를 ‘고도의 최적화’ 과정으로 해석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보가 집단으로 분산됐고, 문자나 디지털 기기 같은 외부 저장 장치가 발달하면서 뇌가 모든 데이터를 내부에 저장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뇌는 크기를 줄이는 대신 신경망 연결 밀도를 높여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도록 ‘다이어트’를 단행했다는 해석도 내놓았다(물론 이런 추정은 자연과학적으로 검증되기 힘들기는 하다).
전문가들은, 두뇌의 구조적 진화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두뇌의 '사용 방식'과 조직화된 기능에서 일어났다고 추정한다. 농경의 시작, 도시와 국가의 형성, 종교와 법의 제도화는 인간 두뇌가 작동하는 환경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은 '신경 가소성'이다. 이는 뇌가 경험과 학습에 따라 신경 연결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인류 유전자에 원래 '읽기'를 담당하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자가 발명되고 보편화되자, 뇌는 시각 처리 구역의 일부를 재배치하여 '문자 형상 영역(VWFA)'을 스스로 구축했다. 이는 문화적 필요성이 뇌의 기능적 구조를 바꾼 명백한 사례로 꼽힌다.AI시대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며 이러한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확산은 주의력, 기억, 감정 처리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마트폰과 검색 엔진은 '기억의 외주화'를 일상화했고, 소셜미디어는 감정 표현과 공감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이런 점은 현대인이 종이책 읽기를 하지 않는 이유의 하나가 될 법한 데 문학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급자가 변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신비한 점이 무엇?
현존 인류는 5대양 6대주에서 다양한 방식의 문화, 문명을 꽃피웠고 그 위대한 작업은 오늘날에도 진행 중이다. AI시대의 미래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선사시대 이래 유지되고 있는 인간의 고유한 잠재력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사회는 희소한 것을 귀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한 탓인지 정작 인간 자신이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로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인간의 신비는 감정의 영역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감정의 복잡성과 눈물의 다중성이 특이하다. 슬플 때 우는 것은 그렇다 쳐도, 너무 기뻐서 울고, 남의 슬픔을 보고도 울고, 심지어 감동이나 경외감 때문에도 눈물을 흘린다. 이는 감정이 단순한 쾌·불쾌를 넘어서 객관적 의미 경험과 결합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이타성과 잔혹성의 공존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은 낯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같은 종 또는 공동의 적이라고 칭한 대상을 가장 잔혹하게 해치기도 한다. 동일인이 집밖에서는 악마가, 집안에서는 선량한 가장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 소방관이 익명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면과, 전쟁·학살 같은 장면이 같은 종에게서 나온다는 점은 소름 돋는 지점이다.
살인의 경우 개인적인 것은 범죄, 국가의 것은 합법, 전쟁에서는 정의, 충성, 애국심으로 각기 그 의미 부여가 다르다. 그 이중성이 사랑의 다양성에도 나타난다. 부모애, 연애, 동지애, 조국애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움직인다. 심지어 자기를 파괴하는 방향으로도 그러하다. 집착, 질투, 광기 때문에 사랑이 인간을 가장 숭고하게 만들기도 하고, 가장 추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류는 유사 이래 이성을 중시하고 감정을 경시하거나 억누르고 자제할 것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감정 사회학같은 분야로 특화되고 있다. AI 개발로 감정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간이 신비로운 존재라고 주목받는 다른 핵심적 요인은 의식과 자기 성찰이다. 인간의 자기의 객관적 현실을 살피는데 열심이면서도 자신을 살피는 존재다. 인간은 우주를 관찰하다가 결국 그것을 관찰하는 자신을 다시 관찰하는 존재가 되고, 나는 누구인가를 평생 물어보는 거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신비롭다.
인간은 죽음을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도 중요하다. 다른 동물도 죽음을 어느 정도 감지하겠지만, 인간은 자기가 죽을 미래 시점을 예상하고, 그걸 철학과 종교 등 다양한 문화로 체계화했다. 그런데 또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일상생활을 한다. 이런 인간의 엇박자인 의식이 문학의 원천이기도 하다. 어느 시인이 ‘문장은 단문이어서는 안 되고 중문, 복문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인간의 의식이나 사물에 대한 의미 부여가 변칙적이거나 복합적이라는 것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신비롭다. 신, 정의, 사랑, 자유 같은 건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인간은 거기에 목숨까지 건다. 종교적 신앙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라는 말도 결국 모두 추상적 상징을 위해 구체적 삶을 내놓는 것이다.
상상력과 가상현실 창조의 능력도 정말 인간만의 특권 같다. 언어, 법, 금융, 국가, 회사는 다 가상의 질서이다.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집단적으로 믿고 따르면서, 그걸 현실을 움직이는 힘으로 만든다. 돈이라는 종이, 국경이라는 경계선, 기업이라는 법인은 전부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든 허구인데, 그 허구가 다시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이것이 상징적 사고와 이어진다. 깃발 하나, 로고 하나가 곧 정체성과 감정을 압축해서 담는 그 능력이다. 예를 들어, 작은 천 조각에 불과한 국기가 사람을 울리고 죽게 만들기도 한다. 이건 동물 세계에서는 안 보이는 묘한 현상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꽤 허약한 육신을 가진 존재인데도, 지구를 장악했다. 인간은 유약한 신체와 강력한 도구의 소유자라는 표현이 그걸 잘 말해준다. 발톱, 이빨, 속도 어느 것도 최상급이 아니다. 대신 뇌와 손, 협력 능력으로 게임의 룰을 바꿔 버렸다. 특히 직립보행으로 시야를 얻고,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된 것이 문명으로 이어진 점은 정말 기묘한 우연과 필연의 교차처럼 느껴진다.
자유의지의 환상과 실재 문제도 있다. 행동이 유전자와 환경, 뇌의 관계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는 연구가 많은데도, 인간은 여전히 그래도 나는 선택할 수 있다고 느낀다.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끝없는 긴장관계 자체가 인간의 신비를 잘 보여 준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유전과 환경, 본능과 이성, 파괴성과 창조성, 유한성과 무한 꿈이 한 몸 안에서 싸우는 장이다. 이 복합성이 곧 신비로움이다. 인간에게 미완성의 완성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가장 무력하지만, 죽을 때까지 배우고 변화하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대를 이어 이어지면서 문화, 문명이 전수되고 발전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개개인이 삶을 자신에게 국한시키면 죽을 때 인생이 허무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인류 조상이후 지속된 긴 인간 띠의 한 부분을 채운 소중한 존재라고 인식할 경우 전혀 그렇지 않게 된다).
개인과 집합체로서의 인간, 인류는 고정된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수정되고 재 작성되는 존재이기에 더 예측 불가능하고 신비롭다. 설명되지만 결코 다 설명되지 않는 존재이다. 과학과 철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어느 지점엔가는 늘 여백이 남을 것 같다. 아마 그 여백 자체가 인간 신비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 때문에 문학이 AI미래 시대에도 건재할 것이다.
인류는 한 지붕 한 가족
인문학은 인간의 유전적 요인, 환경적 적응력 등의 인간학을 토대로 한 관점에서 동서고금, 5대양6대주의 문화와 문명을 총망라하는 관점으로 정립되어야 하고 AI시대의 현재와 미래도 그래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인문학 관련서가 다수 나왔지만 대부분 인간학이 대전제로 되어 있지 않아 그 개념이 십인십색이다. 미래에 대한 것도 인간학을 바탕으로 탐구되어야 적절한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지배적인 인문학 토대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를 합리화시키는 관점에서 만들어졌고 그 결과 인류는 그 뿌리가 다른 백인종, 황인종과 같은 인종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정실화 했다. 이는 결국 지역, 민족, 국가간 착취에 따른 갈등과 대립의 역사를 낳았고 오늘날에도 그 폐해는 지속되고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새로운 논리의 구성은 80억 인류가 한 지붕 한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AI시대에 대한 타당한 접근 방식이 될 것이다.
인간 두뇌는 유사 이래 완성된 채 정지한 기관이 아니다. 환경과 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최적화 경로를 찾아가는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여전히 진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으며, 그 방향은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AI시대를 맞아 인류의 진화는 형식과 내용을 달리해서 계속될 것이다.
문학도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것과 같은 정보환경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십분 고려해야 할 것이다. SNS의 대중화와 정보사회의 발전으로 종이신문이나 잡지 등의 오프라인 매체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국내 많은 문예지들이 자취를 감춘데 이어 최근 샘터가 휴간한 것도 그 영향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TV가 나오면서 라디오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고 종이매체도 인간의 DNA 잠재력을 생각할 때 그 생명력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종이책 문학, 소설도 발상의 전환을 하면서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할 집단지성의 발휘가 필요해 보인다.